항목 ID | GC0620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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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晦西集 |
영어공식명칭 | Hoeseojip |
이칭/별칭 | 『회서 문집(晦西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1978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용뢰의 문집.
[저자]
조용뢰(趙鏞雷)[1889~1927]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보명(普鳴)·여성(汝聲), 호는 회서(晦西)·정애(靜厓)이다. 초명은 석학(錫鶴)이다. 할아버지는 심재(心齋)조성렴(趙性濂)이고, 아버지는 조찬규(趙燦奎), 어머니는 이상선(李相善)의 딸인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생부는 조경규(趙慶奎)이고, 생모는 허욱(許煜)의 딸인 김해 허씨(金海許氏)이다. 부인은 이운수(李雲秀)의 딸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洙洞)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경전과 역사서에 두루 통달하였다. 역사에 심취하여 단군으로부터 조선에 이르는 역사를 연구하였고, 랴오둥[遼東]으로 가서 우리나라 고적을 답사하고 기록하여 『동지(東誌)』 8권을 기술하였으나, 일제에 압수당하였다. 1912년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의 자양산에 있는 한천재(寒泉齋)에서 조병규(趙昺奎)·조석제(趙錫濟)·조정규(趙貞奎)·이훈호(李熏浩) 등과 경서와 역사서에 대해 강론하였다.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의 죽령(竹嶺)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회서집(晦西集)』은 조용뢰의 아들인 조천서(趙天敍)·조천홍(趙天洪)·조천호(趙天護)가 주도하여 편집하고, 김수(金洙)가 교감하여 1978년에 간행하였다. 『회서 문집(晦西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7권 1책의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없으며,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8.8㎝, 세로 29.2㎝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3.9㎝, 세로 20.8㎝이다. 1면 12행에 1행의 자수는 27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회서집(晦西集)'으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문천각, 국립 중앙 도서관, 전남 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훈호와 하겸진(河謙鎭)의 서문(序文)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詩) 57제(題)가 있는데, 고구려 유적지인 봉황성(鳳凰城), 평양, 선죽교(善竹橋) 등 유적을 답사하고 지은 역사 관련 시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권2는 서(書) 2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 면우 곽 선생 종석(上俛宇郭先生鍾錫)」은 학설(學說)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글로, 온 나라의 기대를 받고 있는 곽종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내용이다. 「상 이 대계 승희(上李大溪承熙)」는 대계이승희가 랴오둥 흥덕보(興德堡)의 땅을 매입하려는 것에 대해 급선무가 아님을 주장하는 글이다. 이 밖에 조병규, 안언호(安彦浩) 등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세태를 걱정하고 유학자로서의 책임에 대해 당부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권3에는 잡저(雜著) 8편, 서(序) 1편, 발(跋) 1편이 실려 있는데, 잡저의 「동한당고론(東漢黨錮論)」, 「선양론(禪讓論)」, 「중화 역대 정학론(中華歷代正學論)」 등은 중국의 정치 및 역사와 관련된 논설이다. 권4에는 제문(祭文) 15편, 유사(遺事) 2편, 권5 부록에는 만장(輓章), 권6 부록에는 제문, 권7 부록에는 가장(家狀), 가전(家傳), 행장(行狀), 서사(敍事), 묘갈명(墓碣銘)이 있고, 끝에 조용뢰의 아들 조천호가 쓴 발문(跋文)이 있다.
[의의와 평가]
『회서집』은 조용뢰의 역사관을 연구할 수 있는 문집이며, 일제 강점기 때 함안과 국내외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