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387 |
---|---|
한자 | 晦山集 |
영어공식명칭 | Hoesanjip |
이칭/별칭 | 『회산 문집(晦山文集)』,『회산 선생 문집(晦山生先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194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정려의 문집.
[저자]
안정려(安鼎呂)[1871~1939]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국중(國重), 호는 회산(晦山)이다. 할아버지는 각산(覺山)안평(安泙)이고, 아버지는 후각당(後覺堂)안상기(安相琦)로, 만성(晩醒)박치복(朴致馥)의 제자이다. 어머니는 강봉택(姜鳳宅)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부인은 박봉채(朴鳳采)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하기리 기동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족형인 노천(老川)안정택(安鼎宅)에게 배웠고, 20세 이후에는 면우(俛宇)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후산(后山)허유(許愈), 대계(大溪)이승희(李承熙) 등을 종유하였다. 1912년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서하 마을로 이거하여, 엄천강(嚴川江) 가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다. 1930년에 다시 함안으로 옮겨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음리 사락동에 있는 취우정(聚友亭)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내동(內洞)의 신좌(申坐)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회산집(晦山集)』은 안정려의 아들 안달(安達)의 주도로 1945년에 간행을 계획하였고, 안정려의 재종제(再從弟) 안정익(安鼎益)과 함께 주선하여 1946년에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7년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회산 문집(晦山文集)』, 『회산 선생 문집(晦山生先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9권 4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9.2㎝, 세로 29.6㎝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5㎝, 세로 21.6㎝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2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회산 선생 문집(晦山先生文集)'으로 되어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 경상 대학교 문천각, 계명 대학교 동산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문(序文)이 없이, 권1에는 시(詩) 85제(題)가 실려 있다. 시는 기산 서당(基山書堂), 엄강 서당(嚴江書堂), 취우정에서의 활동 및 교유 인물과 수창한 시들이 많다. 또 유학자로서의 철리시(哲理詩)로, 「섭검계(涉儉溪)」는 물을 건너는 것은 발이지만 조심하는 마음과 발이 함께 움직여야만 내를 건널 수 있다는 내용으로, 유학자의 수양의 자세를 담고 있다. 「명덕음 이수(明德吟二首)」는 명덕(明德)을 불의 밝음[火明]에 빗대어 설명한 내용이다. 사회상을 직시하고 탄식하는 시들이 많은데, 「연자시(鷰子詩)」는 일제에 침략을 당한 것에 대해 한탄하는 내용이고, 「향란탄(香蘭歎)」은 조정의 부정부패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동황사(東皇詞)」는 망해가는 사직을 부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대대로 벼슬해 오던 관리가 아니라 초야의 선비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융릉회고(隆陵懷古)」는 장헌 세자(莊獻世子)의 능을 융릉으로 추존한 것을 두고 장헌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이다. 「을사 국변(乙巳國變)」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두고 거기에 가담한 5적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갑오 동란(甲午東亂)」은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난 배경과 그로 인해 일본 군대가 동원되어 백성들이 도륙하는 실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내용이다. 「양잠(養蠶)」에서는 여전히 얼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양잠의 중요성과 함께 애민 의식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독기자사(讀箕子史)」, 「김후직묘(金后稷墓)」, 「박제상잠환미사흔도(朴堤上潛還未斯欣圖)」, 「살수전(薩水戰)」, 「도미처(都彌妻)」, 「쌍기학(雙冀學)」 등은 역사의 인물을 소재로 지은 시들이다. 「천(天)」, 「일(日)」, 「월(月)」, 「운(雲)」 등은 천체(天體)에 대해 유학자로서 의미를 부여한 시들이다.
권2에는 척암(拓菴)김도화(金道和)에게 보내는 편지 등 서(書) 35편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학문과 관련된 편지들이 많이 보이는데, 「상면우곽선생(上俛宇郭先生)」은 『자치 강목(自治綱目)』의 7가지 조항에 대해 질문한 것이고, 「상이대계선생(上李大溪先生)」은 『이학 종요(理學綜要)』에 대해 질의한 것이다. 권3에는 서(書) 71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답박공헌(答朴孔憲)」은 『논어(論語)』에 관한 질문이 담겨 있다. 「답이도서일로(答李道瑞一魯)」는 기질(氣質)에 관한 논의이며, 「답조유식(答趙裕植)」은 『중용(中庸)』에 대한 내용이다. 「답안형윤(答安衡允)」과 「답정경부엄강서당발문대(答鄭敬夫嚴江書堂發問對)」와 「답박경화인서(答朴敬化仁緖)」는 심리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답조극서봉제(答趙克善奉齊)」는 예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권4에는 서(書) 42편이 실려 있다. 대체로 유학의 경서에 대한 문목에 답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권5에는 잡저(雜著) 33편, 잠(箴) 3편, 명(銘) 9편이 실려 있다. 특히 잡저의 「균전(均田)」, 「학교(學校)」, 「군부(軍賦)」는 정치의 주요 요소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심리(心理)」, 「심기(心氣)」, 「심합이기(心合理氣)」, 「기상무공부(氣上無工夫)」는 제현들과 편지를 통해 주고받은 심성설(心性說)에 대해 정리한 것으로, 안정려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할 수 있는 주요한 작품들이다. 그 외 유람을 한 기문들로 「강좌 기행(江左記行)」은 경상북도 영주와 안동을 유람한 내용이고, 「통해 유록(統海遊錄)」은 통영을 유람한 내용이다. 「엄강 서당 강의(嚴江書堂講儀)」와 「엄강 서당 발문(嚴江書堂發問)」은 엄강 서당에서 행해진 교육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권6에는 서(序) 14편과 기(記) 31편, 발(跋) 7편이 있다. 서문 가운데 「오서석의서(五書釋義序)」와 「상변요의서(常變要義序)」는 안정려의 저서인 『오서석의(五書釋義)』와 『상변요의(常變要義)』에 대해 개괄한 내용이다. 권7에는 상량문(上樑文) 15편, 축문(祝文) 14편, 제문(祭文) 20편, 애사(哀辭) 4편, 비(碑) 14편이 있다. 권8에는 묘지명(墓誌銘) 7편, 묘갈명(墓碣銘) 30편, 묘표(墓表) 5편이 있다. 권9에는 행장(行狀) 12편과 전(傳) 4편이 있는데, 전 가운데는 안중근(安重根)에 대한 전기가 실려 있다. 책 끝에는 안정익이 쓴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회산집』은 안정려의 학문과 사상, 역사관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 주요한 자료이며, 일제 치하 당시 함안의 세태와 지식인의 동향을 알 수 있는 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