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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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鏞濮 |
영어공식명칭 | Jo Yongb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혜금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청년회와 군북 청년 회의 임원으로 활동한 인물.
[활동 사항]
조용복(趙鏞濮)은 함안군함안 청년회의 재무 부장을 역임하였다. 함안 청년회는 1920년 7월 30일 함안읍사립 안신 학교에서 ‘품성 향상, 지식 계발, 체육 장려, 산업 발달, 풍속 개량’ 등 5대 목적을 표방하며 창립되었다. 야학 강습소를 열어 일어와 산술을 가르쳤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조용복은 함안 청년회와 비슷한 시기에 결성된 것으로 보이는 군북 청년회에서 의사장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3월 22일 함안군 군북면 면장으로 당선되어 역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24년 12월 24일 설립된 군북 금융 조합(郡北金融組合)[적립금 1만 8300원]의 대표를 맡았다.
1927년 2월 15일 신간회가 결성되어 계몽 운동, 생활·생존권 수호 운동, 반봉건 운동 등 사회 문제와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각종 억압 법률의 철폐, 단결권, 파업권 같은 정치 문제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민족주의자들이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방편으로 협동조합 운동을 추구하여 신간회와 함께 진행되었다. 신간회 함안 지회가 결성되고 1년이 지난 1928년 11월 18일 군북, 죽남, 법수 세 개 면을 망라한 군북 협동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조용복이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민선 군북 면장에 선임되었고, 성인 교육 협회(成人敎育協會) 회장, 후생 협회(厚生協會)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인 조노제는 도의원을 역임하였고, 광복 후에는 우익의 좌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