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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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秉熙 |
영어공식명칭 | Nam Byeonghui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주용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남병희(南秉熙)[1900~1959]는 1900년 2월 20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서울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조한휘(趙漢輝), 이찬영(李讚榮) 등이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어났다.
남병희는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나누어 주고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 오후 2시가 되자 군중은 3,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출동한 마산 경찰서와 현지 일본 경찰들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군중은 계속 시가를 행진하며 우체국·일본인 소학교 건물 등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긴급 출동한 마산 중포병 대대 군경의 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시위 과정에서의 남병희의 활동은 공판 내용에서 확인된다.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재판장은 "피고 남병희는 3월 19일 함안 읍내 소요에서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라고 판시하였고, 순사보인 김종률은 "박노일(朴魯一)·남병희 등은 주재소에 침입하여 몽둥이와 괭이 등으로 기물을 파괴하고 난폭한 짓을 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남병희는 징역 6개월 형을 선고 받아 마산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0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