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03 |
---|---|
한자 | 金書鍾 |
영어공식명칭 | Gim Seoj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혜금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서종(金書鍾)[1893~1943]은 1893년 6월 13일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직이다. 김태봉(金泰鳳)과 김태린(金泰麟) 두 아들이 있고, 세 명의 딸이 있다. 을사조약 이후에 대종교의 교도가 되었다. 대종교는 민족의 혼을 일깨운다 하여 일제에 심한 탄압을 받아 본거지를 만주 왕칭 현[汪淸縣]으로 옮기게 되었다. 김서종도 만주에서 대종교의 재건과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0년 10월 북로 군정서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하자 일본군은 만주의 대종교 본부를 습격하였다. 그 결과 대종교는 본부를 하얼빈으로 옮기게 되었다. 김서종도 1934년 하얼빈으로 옮겨가 대종교 하얼빈 선도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 간부들을 일제히 잡아들이는 임오 고변이 있었다. 대종교가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제의 대륙 침략과 식민 정치에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 교주 윤세복(尹世復)은 무기 징역, 간부 5명은 징역 7년에서 15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김서종과 권상익(權相益)·이정(李楨)·안희제(安熙濟)·나정련(羅正練)·강철구(姜鐵求)·오근태(吳根泰)·나정문(羅正紋)·이창언(李昌彦)·이재유(李在囿) 등은 고문으로 옥사하였고, 이들은 대종교 순교 십현(殉敎十賢)으로 추앙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