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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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偁 |
영어공식명칭 | I Ching |
이칭/별칭 | 여선(汝宣),황곡(篁谷),관화간죽옹(灌花看竹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 마을[들기미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여선(汝宣), 호는 황곡(篁谷). 할아버지는 해남 현감을 지낸 이순조(李順祖)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낸 이사후(李士詡)이고 어머니는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박윤수(朴允秀)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활동 사항]
이칭(李偁)[1535~1600]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삼촌 임훈(林薰)과 임운(林芸)에게 배웠고, 뒤에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입격하고, 1583년(선조 16)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남부 참봉(南部參奉)에 제수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정(李瀞)과 창의하였다. 1595년(선조 28) 청양 현감(靑陽縣監)과 진잠 현감(鎭岑縣監)에 제수되었지만 모두 부임하지 않다가, 1596년 석성 현감(石城縣監)에 제수되었을 때 김우옹(金宇顒)과 곽준(郭䞭) 등의 권유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이웃 고을인 홍산현(鴻山縣)에서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수습하고는, 대처를 못 하였다는 이유로 사직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 피난을 갔다가 1599년(선조 32) 고향으로 돌아와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상검 마을에 우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1600년 12월 16일 검암 정사(儉巖精舍)에서 66세를 일기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3권 1책의 『황곡집(篁谷集)』과 1594년{선조 27) 5월 24일부터 1596년{선조 29) 8월 14일까지의 기록인 『황곡 선생 일기(篁谷先生日記)』가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황곡 서원(篁谷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