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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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鳳鎬 |
영어공식명칭 | Mun Bongho |
이칭/별칭 | 일암(一庵)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동일 |
[정의]
근대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선명(善鳴), 호는 일암(一庵).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인 문다성(文多省)이고, 중시조는 조선 시대 문익점(文益漸)의 둘째 아들인 순질공(純質公)문중성(文中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용득(文庸得)이고, 할아버지는 문광환(文光煥)이다. 아버지는 서계(西溪)문재환(文在桓)이며, 어머니는 이용삼(李容三)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문봉호(文鳳鎬)[1878~1950]는 일산(一山)조병규(趙昺奎)[1849~1930]와 신암(信庵)이준구(李準九)[1851~1924] 등 당대 함안 인근의 학자들 문하에 출입하며, 후산(厚山)이도복(李道復)[1862~1935]과 종유하여 함안 지역의 대표적인 남인 지식인으로 평가된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함안의 방어산에 올라 통곡하며 「채미시(採薇詩)」를 지어 슬픔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920년 제자의 예를 갖추어 간재(艮齋)전우(田愚)[1841~1922]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만년에는 함안군 군북면방어산(防禦山) 아래에 학계정(鶴溪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며 지역의 유풍을 진작하였다.
[학문과 저술]
스승인 전우의 학문을 계승하여 심성론(心性論)에서는 이(理)는 무위(無爲)이고 실제상의 작용은 모두 기(氣)가 하는 것이며, 신(身)을 주재하는 것은 심(心)이라고 하였다.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같다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하고, 하늘이 부여한 성(性)은 모두 같지만 품부 받은 기(氣)가 다름으로 인해 발현되는 것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저서에 시문집인 『일암집(一庵集)』 18권 10책이 전한다.
[묘소]
묘는 함안군 지역의 방산(防山)이라고만 전하여 방어산 기슭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