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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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鍾律 |
영어공식명칭 | An Jongyul |
이칭/별칭 | 화숙(和叔),손헌(巽軒)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난희 |
[정의]
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손헌(巽軒). 고려 대장군 안방걸(安邦傑)의 12세손이다.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낸 안수(安綏)가 함안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성균관 생원이었던 졸암(拙庵)안여거(安汝居)가 칠원면 영동[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으로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용와(慵窩)안경직(安景稷)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한중(安漢重)이며, 할아버지는 안효무(安孝武)이다. 아버지는 안형원(安衡援)이고, 어머니는 황입기(黃立基)의 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성재홍(成在洪)의 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며,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안봉수(安鳳洙), 안인수(安麟洙), 안붕수(安鵬洙), 안동수(安東洙), 안만수(安晩洙)이고 사위는 상주 주씨(尙州周氏)주영기(周永基), 전의 이씨(全義李氏)이근호(李根鎬), 철성 이씨(鐵城李氏)이용재(李容在)이다.
[활동 사항]
안종율(安鍾律)[1886~1948]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에서 태어났다. 약재(約齋)안종화(安鍾和), 긍암(兢庵)안종두(安鐘斗), 현재(弦齋)안헌수(安憲洙)와 함께 족형인 희재(希齋)안종창(安鍾彰)에게서 수학하였다. 1911년 봄 백형의 권유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西下面) 봉전리(鳳田里) 다전(茶田)에 있는 면우(俛宇)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집지(執贄)하고 수학하였다. 1906년(순종 즉위년) 고종이 퇴위하자 슬프게 통곡하고, 1919년 고종의 인산 일에도 곡을 하여 예를 갖추었다. 그 해 독립을 위해 애를 쓰던 스승 곽종석이 병을 얻어 죽자 심상(心喪)으로 삼년상을 치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4권 2책의 『손헌집(巽軒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동쪽 사대산(射臺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