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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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鍾斗 |
영어공식명칭 | An Jongdu |
이칭/별칭 | 상부(尙夫),긍암(兢庵)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익재 |
[정의]
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상부(尙夫), 호는 긍암(兢庵). 시조는 안방걸(安邦傑)로, 그로부터 12대가 지난 뒤 안수(安綏)가 경상남도 함안군 안인리(安仁里)로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안경관(安景觀)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유중(安有重)이며, 할아버지는 안효기(安孝基)이다. 아버지는 안준원(安駿遠)이고, 어머니는 이규정(李奎精)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친아버지는 안수원(安壽遠)이며, 친어머니는 조종식(趙宗植)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은 황용연(黃龍淵)의 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활동 사항]
안종두(安鍾斗)[1881~1954]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말을 배울 무렵 이미 한자 수백 자를 알았다. 7세 때 이미 십구사(十九史)[중국에서 ‘십팔사’에 『원사(元史)』를 더한 열아홉 가지의 사서(史書)]를 읽고 이해할 정도였으며 시를 지을 수도 있었다. 15세 되던 1905년(고종 42) 면우(俛宇)곽종석(郭鍾錫)을 배알한 뒤 해마다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회당(晦堂)장석영(張錫英)[1851~1926], 소눌(小訥)노상직(盧相稷)[1855~1931], 눌재(訥齋)김병린(金柄璘,)[1861~1940]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6권 1책의 필사본인 『긍암집(兢庵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가연리무릉산국수봉(菊秀峯)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