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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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齋 遺稿 |
영어공식명칭 | Pyeongjaeyugo |
이칭/별칭 | 『평재집(平齋集)』,『평재 선생 문집(平齋先生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1972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병의 문집.
[저자]
이병(李柄)[1876~1950]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두칠(斗七), 호는 평재(平齋)이다. 양졸정(養拙亭)이휴복(李休復)의 10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와(愚窩)이상지(李尙志)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이태순(李泰純)이며, 어머니는 조계식(趙啓植)의 딸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은 강탁(姜鐸)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현재의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서 생장하였다. 직각(直閣) 이의국(李義國), 추범(秋帆)권도용(權道溶) 등과 교유하였다. 효행으로 칭송받은 고조할아버지 퇴곡(退谷)이연(李堜)과 증조할아버지 이상지를 본보기로 삼아, 뛰어난 효성으로 이름났다. 묘소는 함안군 군북면백이산 선영 아래 사좌(巳坐)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1950년 6·25 전쟁으로 유고의 태반이 소실되었는데, 이병의 아들 이찬주(李贊周)가 문집을 수집하고, 조카 이위주(李渭周)가 주도하여 가장(家狀)을 짓고 조용술(趙鏞述)의 묘갈명(墓碣銘)을 받고 이일해(李一海)의 서문(序文)을 갖추어 1972년에 『평재 유고(平齋遺稿)』를 간행하였다. 『평재집(平齋集)』, 『평재 선생 문집(平齋先生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연활자본(鉛活字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7.8㎝, 세로 38.8㎝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4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평재 유고(平齋遺稿)'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첫머리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부(賦) 1편, 시(詩) 196제(題), 권2에는 서(書) 13편, 기(記) 3편, 상량문(上樑文) 1편, 제문(祭文) 30편, 축문(祝文) 3편, 고유문(告由文) 2편, 봉안문(奉安文) 1편, 포양문(褒揚文) 1편, 가장 1편, 유사(遺事) 2편, 발(跋) 1편, 논(論) 2편, 설(說) 1편, 명(銘) 5편과 부록으로 가장과 묘갈명이 실려 있다. 책 끝에는 손자 이규영(李圭永)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무오 칠월 기망 범주 유정강(戊午七月旣望泛舟遊鼎江)」은 1918년 정강(鼎江)에서 뱃놀이 한 정취를 노래한 것이다. 「조문관성규 정중석규 학중경식 이만세창자달옥환 여왕영이위지(趙文寬聖奎定中碩奎學中璟植以萬歲唱自達獄還余往迎而慰之)」는 1919년 3월 20일의 함안군 군북면군북 장날에 있었던 만세 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조성규·조석규·조경식을 맞이하며 그들의 의로운 기상을 칭찬하며 위로하는 시이다. 그 외에도 백이산 시모임[伯夷山詩契會], 행정 계회(杏亭契會)에서 함안의 사림들과의 활동을 볼 수 있고, 명동(明洞)의 추모재(追慕齋), 함안 향교, 방산 서당(防山書堂), 도천재(道川齋), 취우정(聚友亭) 등 함안의 주요 명소에 대해 지은 시들이 많다. 권2의 「경모재기(敬慕齋記)」와 「경모재 중건 상량문(敬慕齋重建上樑文)」 등은 이병의 10대조 양졸정(養拙亭)이휴복(李休復)을 추모하기 위해 1898년에 중건한 경모재에 대한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평재 유고』는 이병(李柄)의 사상과 현실 대응 등을 연구할 수 있는 문집으로, 특히 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 사림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