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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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晩愚 安公 遺稿 |
영어공식명칭 | Manuangongyugo |
이칭/별칭 | 『만우 유고(晩愚遺稿)』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진성 |
[정의]
선대가 함안에 살았고 창원에 거주했던 안인석의 문집.
[저자]
안인석(安寅錫)[1838~1908]의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하건(夏建), 호는 만우(晩愚)이다. 창원 광려산 아래 두척(斗尺)에서 태어났다. 안인석의 13대조는 조선중종 때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로 이거하였으며, 그의 9대조는 다시 창원으로 옮겨 살았다. 묘소는 함안의 검암산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안인석의 손자 안기호(安畿鎬)가 『만우 안공 유고(晩愚安公遺稿)』 말미에 부록한 「유고 수집후 소감(遺稿蒐集後所感)」에 의하면 문집 간행 경위는 다음과 같다. 『만우 안공 유고』는 안기호가 집안에 전하는 문서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편찬하게 되었다. 안기호는 신학문을 공부하여 선조들이 했던 전통 학문에 대한 의식이 없다가 만년에 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이 당시 가세가 기울어 집안의 문서들이 없어지거나 손상된 것이 많았는데, 그중 조부가 남긴 문서들을 모아 우선 정기헌(鄭基憲)에게 정리를 부탁하고, 그 뒤 조원규(趙元奎), 조열제(趙說濟)의 정리와 교정을 거쳐 문집이 완성되었다. 이 외에 도움을 준 인물들은 안인석의 생질들과 종생질이다. 또한 『만우 안공 유고』의 편집은 한글 전용 시대에 맞추어 한문에 토를 붙이는 방식으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만우 유고(晩愚遺稿)』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필사본이다. 1면 12행에 1행의 자수는 26자이다. 권수제는 '만우 안공 유고(晩愚安公遺稿)', 판심제는 '만우 유고(晩愚遺稿)'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문집 앞머리의 서문은 안종희(安鍾禧)가 지었고, 그 다음에는 안인석의 친필 2점을 배치하였다. 권1에는 안인석이 지은 시(詩), 편지(便紙), 잡저(雜著), 서(序),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등을 수록하였고, 권2에는 안인석의 지인들이 지은 만시(挽詩)와 제문이 다수 수록되었다. 가장(家狀)은 안인석의 증손자 안승학(安承學)이 국한문 혼용체로 지었다. 행장行狀)은 조열제(趙說濟)가, 묘갈명(墓碣銘)은 조대제(趙大濟)가, 묘표(墓表)는 노재수(盧再洙)가, 전(傳)은 이병훈(李秉焄)이 각각 지었다. 문집 말미에 발문 격의 글을 쓴 인물은 안교민(安敎民), 조용수(趙鏞洙), 이창형(李昌衡), 안기호이다.
[의의와 평가]
『만우 안공 유고』는 창원 두척에 주로 거주하던 안인석의 문집이다. 안인석의 선대가 함안에 거주했고, 안인석의 묘소도 함안에 있다. 또한 문집 편찬 과정에서 조열제 등 함안에 거주한 인물도 다수 참여하였다. 이를 통해 창원과 함안 사이를 오가며 활동했던 안인석의 행적을 일별할 수 있다. 또한 『만우 안공 유고』는 신학문을 익혔던 안인석의 손자 안기호의 주도로 편찬되었는데, 1958년 문집 간행 당시의 시대 조류를 반영하여 한문에 토를 다는 방식으로 편집하였다. 그리고 몇 편의 국한문 혼용체의 글도 아울려 실려 있는데, 이는 광복 이후 한학 지식인의 문집을 편집하는 한 가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