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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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遯江 遺稿 |
영어공식명칭 | Dungangyug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진성 |
[정의]
1965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영기의 문집.
[저자]
이영기(李永基)[1878~1948]는 함안군 대산면 황사리에서 거주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조열제(趙說濟)가 지은 『둔강 유고(遯江遺稿)』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이영기가 죽은 뒤 그의 장남 이호형(李鎬瀅)이 선친의 원고를 수습하여 조용극(趙鏞極)에게 교정과 편집을 맡겨 간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이 완수되기 전에 이호형이 세상을 떠나 간행이 한동안 늦춰졌다. 그 뒤 이호형의 동생 이호철(李鎬澈)이 형의 뜻을 이어 1965년 봄에 노근용(盧根容)에게 다시 교정을 부탁하고 대폭 재편집을 가하여 간행하였다. 이때 노근용에게 서문(序文)도 아울러 요청하였으며, 발문을 지은 조열제도 문집 간행을 도왔다. 서문은 노근용이 1964년 1월에 지었고, 발문은 1965년 1월 조열제가 문집 간행 직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4권 2책의 석인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9.4㎝, 세로 28.8㎝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7㎝, 세로 19.7㎝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2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둔강 유고(遯江遺稿)'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과 권2에는 이영기가 지은 시(詩)가 수록되어 있는데, 다른 시에 차운(次韻)한 시, 다른 인물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3에는 교유 인물들에게 보낸 편지, 잡저(雜著), 서문, 기문(記文), 발문, 명(銘)이 포함되어 있다. 이영기가 편지를 보낸 인물로 장석영(張錫英), 이중철(李中轍), 조병규(趙昺奎), 조정규(趙貞奎), 노상직(盧相稷), 이훈호(李熏浩), 권상행(權相行), 조용섭(曺龍燮), 조긍섭(曺兢燮), 노수형(盧秀亨) 등이 있는데, 장석영은 칠곡에 거주했던 인물이고, 이중철은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예안에 거주했던 인물이며, 나머지는 함안이나 인근의 창녕, 초계 등지에 거주했던 인물이다. 잡저 중에는 오희보(吳希甫)에게 자(字)를 지어주며 지은 자설(字說)과 열부 곽씨의 표창을 요청하는 글이 있다. 서문에는 박이정(朴而貞)이 중국으로 가는 것에 대해 송별하는 글, 조형진(趙亨進), 조공립(趙公立)이 안동 예안으로 유람을 갈 적에 송별하는 글, 이응원(李應元)이 귀성(歸省)하는 것을 송별하는 글이 있다. 기문 중에 「죽포기(竹圃記)」와 「정헌기(井軒記)」는 지인의 호에 대한 부연 기록이며, 「흠모재 중수기(欽慕齋重修記)」는 흠모재를 중수한 일에 대한 경위를 설명한 글이다. 그외 기문으로 「양어담기(養魚潭記)」, 「덕산재기(德山齋記)」, 「만산 유거기(晩山幽居記)」, 「일호정기(一湖亭記)」, 「봉강기(鳳岡記)」, 「춘고당기(春皐堂記)」, 「월호정기(月湖亭記)」 등이 있는데, 대개 해당 장소나 건물에 대한 내력을 기록한 글이다. 발문으로는 「기강 문집발(杞岡文集跋)」이 있는데, 문집 주인의 학맥, 학문 성격 및 간행 경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명으로 「청은정명(淸隱亭銘)」, 「천곡재명(泉谷齋銘)」이 있다.
권4는 제문(祭文), 고유문(告由文), 묘갈명(墓碣銘), 유사(遺事), 장록(狀錄),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영기가 제문을 써서 추모한 인물은 장석영, 이중철, 이순기(李絢基), 조병규, 조정규, 노상직, 이훈호 등 다수이다. 고유문에는 이영기의 9대조 이명호(李明怙)의 묘에 비석을 세운 연유를 고하는 글이 있다. 이영기가 지은 묘갈명으로는 오인익(吳仁益) 묘갈명이 있고, 이수화(李壽華)와 이익동(李益東) 일생을 기록한 유사를 각각 지었다. 또한 이영기의 9대조와 형제 간인 이명신(李明忄新)의 일생을 기록한 가장(家狀)과 황규석(黃珪錫)의 행장을 지었으며, 효자 송헌영(宋憲影)과 조성귀(趙性龜)의 일을 대략 기록한 글도 지었다. 부록에는 이영기의 일생을 기록한 가장과 묘갈명이 있는데, 가장은 이영기의 아들 이호영이 지었고, 묘갈명은 조용극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둔강 유고』는 함안 지역에서 태어나 거주했던 이영기의 생활과 사상, 교유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영기는 함안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이영기 생존 시기의 함안 인물, 유적 등에 대한 기록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개항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이영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층적인 교유 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 그 시기의 지역사 및 유림 동향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광복 이후 석인본으로 간행된 문집의 일례를 『둔강 유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