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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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介智 墓 |
영어공식명칭 | I Gaeji My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산10-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성우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개지의 묘.
[개설]
이개지 묘(李介智墓)를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묘가 모여 있으며, 5기의 묘비가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 모촌(茅村)이정의 묘가 있다. 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함으로 조식(曺植)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 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진해·창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1602년 상주 목사,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중에 파괴된 진주의 덕천 서원(德川書院)을 다시 세웠으며 함안의 도림 서원(道林書院), 진주의 대각 서원(大覺書院)에 배향되었다. 이개지(李介智)[1415~1487]는 『함주지(咸州誌)』 「冢墓」 허침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에 따르면 "아버지의 휘는 오, 어머니는 의령 남씨로 증숙부인이다. 1415년(태종 15) 5월 태어났고 1487년(성종 18) 4월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홍치 원년 무신[1488] 12월 부인 묘와 같이 장사 지냈다"라고 한다.
가장 아래쪽에는 이전 묘가 있는데, 『함주지』에 따르면 이전은 자는 가고(可沽)이며 이오의 증손이다. 일찍부터 무예가 출중하였는데 무예를 그만두고 자제들의 교육에 힘썼으며, 근방의 선비와 벗이 풍류를 듣고 학문을 닦으려고 오는 이가 많았다. 대산 선조 묘 아래에서 살다가 나이 78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파산조준남의 묘비이다. 『함주지』 「가묘」에 따르면 조삼의 증손자인 조준남의 묘가 법수산 서쪽 기슭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이곳의 다른 묘역들의 설명과 일치한다. 재령 이씨(載寧李氏)의 묘역에 함안 조씨(咸安趙氏)의 묘가 자리한다는 것이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위치]
이개지 묘는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행동 마을 회관 맞은편 능선 정상부에 위치한다. 모촌 이정 묘소 아래에 있다.
[형태]
묘 앞에 지붕돌은 없고 비신(碑身)만 세운 장방형의 비석이 있다. 비석은 전체 높이 190㎝, 비신 높이 123㎝, 너비 59㎝, 두께 19㎝이다.
[금석문]
비석에 ‘증가선대부 호조 참판 이공 지묘 증정부인 하씨 지묘(贈嘉善大夫戶曹參判李公之墓 贈貞夫人河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이개지 묘는 재령 이씨 묘역 내에 있으며, 묘역의 배치와 특징 그리고 양식적 계승 등을 알 수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