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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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 協同組合 |
영어공식명칭 | Haman Cooperative Feder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 지역에 있었던 협동 조합.
[개설]
함안 협동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촌 지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를 위해 활동한 함안 지역의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 이후 각 지역의 청년회와 구락부를 주도한 지역 유지들과 지식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에서 나타난 산업 조합의 유형은 일본처럼 신용 조합이 중심이 아니라 생산 조합 또는 소비조합의 성격이 강했다.
국내에서 나타난 소비조합 운동은 첫째, 소비자의 이익을 중시하는 입장, 둘째, 사회 개조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 운동론적 입장, 셋째, 자본주의 생산력 증대에 역점을 둔 입장 등 여러 가지의 입장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신간회 각 지회에서 추구한 협동조합론은 로치텔 방식의 협동조합론을 충실히 따르는 협동조합사 계열의 협동조합론이었다. 로치텔 방식의 운영 원칙은 첫째, 1인 1구 주의, 둘째, 현금 판매 방식, 셋째, 시가 판매, 넷째, 시가 판매에 따라 생긴 차익[이익]은 각 조합원의 이용고에 비례해서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설립 목적]
함안 협동조합은 지역 농민들의 생활 보호, 경제적 문제의 해결, 자립 역량 강화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함안 협동조합은 1929년 9월 함안군 가야면 말산리에 설치되었으며, 일본인 상인들의 시장 진출을 우려한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창립하였다. 창립 당시 점포 경영 방법과 조합 모집의 일, 출자금 징수 등을 논의했다. 당시 임원진은 구재벽, 조창룡, 강대호, 조동헌, 이정식, 조재진, 구대현, 한주유, 이규석, 전상무, 이사 안정구, 감사 조성하 등으로 구성되었다. 1929년 10월 함안군 가야면에 사무소를 개점하고 이듬해인 1930년 9월 포목부를 신설했다. 함안에서는 지배 엘리트와 저항 엘리트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 청년 동맹이나 신간회 지회에서 활동하던 저항 엘리트들은 협동조합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1931년 신간회 해소(解消) 이후에는 협동조합 활동 역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의의와 평가]
농민들의 자조 활동으로서는 의의가 있으나 당시 지역 사회의 항일[반일] 운동과의 결합이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