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농민 조합 지세, 모세 철폐 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13
한자 咸安 農民 組合 地稅, 牟稅 撤廢 鬪爭
이칭/별칭 군북 농민 조합 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함안 농민 조합 군북 지부 조강제·김용수·조영제·조복래 등이 지세와 모세의 납부 반대와 소작권 이전 반대 운동을 선동
종결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조강제·조영제·조복래 등이 모세 불납과 작권 이동 반대 투쟁으로 마산 법원에서 징역 6월 형을 선고 받음
성격 농민 운동
관련 인물/단체 조강제|김용수|조영제|조복래|박개순|함안 농민 조합

[정의]

1931년 함안 농민 조합 군북 지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지세와 모세 철폐 운동.

[역사적 배경]

함안군의 농민은 경상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경영 규모가 작고 논밭에서 나는 곡식의 양이 적어 궁핍한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지주들이 지세(地稅) 및 공과금을 소작농들에게 전가해 소작료의 증가를 꾀하기도 하고 소작권이 자주 변경되어 소작농의 생활이 불안정하였다. 이와 더불어 일본인 지주나 농장의 주도로 시작된 소작 계약 증서와 소작 규약은 소작농의 지배와 수탈을 강화시키는 한 방편이었다. 이들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함안 지역의 농민들은 더욱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경과]

함안 지역에서 농민 운동은 함안 청년회 소속이었던 조진규·조문극 등이 함안 소작인 조합을 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27년 7월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함안 농민 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각 지부 설치 이후에는 농민 권익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으며, 이는 여러 소작 쟁의로 이어졌다. 이 중 1931년 함안 농민 조합 군북 지부조강제·김용수·조영제·조복래 등이 마을마다 순회하면서 지세와 모세(牟稅)의 납부 반대와 소작권 이전 반대 운동을 선동한 군북 농민 조합 사건이 있었다. 군북 농민 조합 사건으로 1931년 11월 함안 농민 조합 간부 조영제·조복래·박개순 등이 검거되었다.

[결과]

1932년 함안 농민 조합 간부 조강제·조영제·조복래 등은 모세 불납과 작권 이동 반대 투쟁이라는 죄명으로 마산 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 유예 2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

[의의와 평가]

3·1 운동 이후 함안 청년회를 중심으로 함안 농민 조합이 결성되었다. 함안 농민 조합은 함안 지역 내 소작인과 농민들의 권익 보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섰으나, 일제의 갖은 탄압으로 인해 농민 운동의 활동이 점차 위축되었다. 함안 농민 조합 지세, 모세 철폐 투쟁은 1920년대 이후 함안 지역에서 청년들이 주도하는 농민 중심의 민족 해방 운동으로 일제 시기 민족 해방 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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