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향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295
한자 咸安 鄕會
영어공식명칭 Haman Hyangho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양미숙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거주하는 사족을 중심으로 운영된 지방 자치 회의.

[개설]

일반적으로 향회(鄕會)는 조선 시대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이 중심이 된 지방 자치 회의였으나,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이 점차 변하게 되었다. 18세기~19세기 이후 향회는 주로 지방의 부세(賦稅) 수취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구로서 지방 수령(守令)의 부세 자문 기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향회는 법제화된 공식적인 기구로서, 새로이 개정된 조세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지방 지배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함안 향회(咸安鄕會)는 18~19세기 함안 수령(守令)의 재정 운영을 자문하기 위한 기구로서 재정 운영의 과정에서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포흠(逋欠)의 해결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함안 향회의 기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향회가 그러하였듯이 부세 운영과 관련한 역할이었다. 지방 재정 가운데 잡세(雜稅)의 하나였던 색락미(色落米)를 폐지할 것인지의 여부도 향회의 결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고, 지방관에 의한 각종 재정의 자의적 지출을 승인하고 처리하는 역할도 하였다.

이 시기 함안 향회는 군수 오횡묵(吳宖默)에 의해 관(官)이 주도하는 향회로 그 성격이 점차 변화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오횡묵은 함안 향회의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함안 향회를 이용하려고 하였다. 1890년 1월 포흠 해결 방안이 함안 향회와 의논을 거치기는 했으나 결국 오횡묵의 의도대로 해결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갑오개혁 이후에는 법제화 된 공식적인 기구로서 새로이 개정된 조세 제도의 원활한 운영과 지방 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말 함안 향회는 지방 수령의 재정 자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포흠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함안 향회가 일반 민중들을 대변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점차로 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향회 구성원들은 향촌의 유력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종종 일반 민중들과는 대립되었다. 당시 함안 군수 오횡묵은 이들을 이용하여 향회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려고 하였다. 따라서 함안 향회는 일반 민중을 대변하여 지방 수령의 재정 운영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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