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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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悅里 |
영어공식명칭 | Ongnyeol-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옥렬리(玉悅里)라는 지명은 옥산(玉山)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옛날에 이 마을에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 오씨실[吳氏谷]이라 부른 것이 옥이실로 되었다가 지금의 옥열(玉悅)로 되었다. 또한 옥렬리는 옥산 마을의 옥(玉) 자와 이열(耳悅) 마을에서 열(悅) 자를 따서 옥열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옥렬리에 속한 자연 마을로는 효사동·옥지·독점·구사·양계·여기골 등이 있다.
숙종(肅宗) 때의 선비인 안국장(安國章)이 부모님에게 효행이 뛰어나 영조(英祖) 때에 대동미(大同未)와 함께 효우자(孝友者)라는 호를 하사(下賜) 받았다. 이때부터 이 마을에 효자가 많이 난다고 하여 효사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지(玉只) 마을은 이 동네를 끼고 있는 옥녀봉의 옥(玉) 자를 따고 옛날에 마을 앞에 못이 하나 있었다고 하여 다만 지(只)자를 따서 옥지라 부르는데 옛날에는 옥지골[玉只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독점[陶店] 마을의 독[陶]이란 운두가 높고 중배가 약간 부르며 전이 달린 큰 오지그릇이나 질그릇 따위를 말하는데 옛날에 독을 많이 구워 내던 곳이라 하여 독점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옹점(甕店)이라고도 하였다. 구사(舊寺) 마을은 옥지 옆에 있는 동네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동네 한복판에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양계(養鷄) 마을은 효사동 바로 옆에 위치하며 앵기라 하기도 한다. 옛날 옥녀봉 밑에 있는 묘를 이장하려 묘를 파니 두 마리의 닭이 나와 날아갔다고 하여 이 산 아래 있는 동네를 양계라 하였다고 한다. 여시골[狐谷] 마을은 옛날에 다른 산에 비해 이 마을을 둘러싼 산지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여시등[여우등]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옥렬리는 조선 후기 산서·서촌·하기와 함께 외대산면에 속해 있었으며 면 소재지가 있어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 내대산면과 외대산면이 병합하여 대산면으로 개칭되면서 면 청사를 현재의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로 옮겨 가게 되었고 옥렬리는 대산면의 남부에 위치한 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옥렬리는 서쪽 수구(水口)를 제외하면 모두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의 안국산 서쪽 끝자락에서 발원한 옥렬천이 북쪽의 대터등산, 남쪽의 안산 등에서 발원한 지류들과 합쳐져 서쪽으로 흐르며 함안천(咸安川)으로 흘러든다. 서쪽으로 흐르는 옥렬천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듯 계곡이 누운 S자 형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현황]
옥렬리는 대산면의 남부에 위치한다.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186가구에 293명[남 131명/여 16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옥산동(玉山洞)과 이열동(耳悅洞)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열동의 규모가 더 크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의 특성인 여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옥렬리 동남쪽 경계부에는 산지에 삼보 산업이 들어서 있으며 서쪽 경계부에는 옥렬천과 함안천이 만나 큰 늪이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