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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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木里 |
영어공식명칭 | Bum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부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부목리(富木里)는 부촌동(富村洞)·목지동(木池洞)·마산동(馬山洞)의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옛날에는 소리방[聲村]이라 불렀다. 부촌동은 부목리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로 일제 강점기 때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자 동네라고 소문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촌 옆에는 낙동강(洛東江) 줄기가 흐르고, 강가에는 마당 같이 넓은 바위가 있어 이를 마당 바위라고 부른다.
갈마산(渴馬山)은 갈매산이라고도 부르며 마산동의 뒷산으로 말의 형상과 흡사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벌판에 말의 형태와 비슷한 산이 남강(南江) 변을 따라 걸어가는 것을 보고 빨래하는 젊은 아낙네가 산이 걸어간다고 큰 소리로 외치자 산을 메고 가던 산신령이 “방정맞은 아녀자”라 하면서 메고 가던 산을 이곳에 버려두고 떠났다고 전하는데, 그 후 동네 사람들이 말이 목이 마르면 안 된다고 하여 말의 입 모양처럼 생긴 곳에 두 개의 웅덩이를 파서 목마른 말이 먹도록 하였다. 심한 가뭄에도 이 웅덩이의 물이 마르지 않아 갈마정(渴馬井)이라 불렀으며 현재는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 이름도 산의 명칭에 유래되어 마산(馬山)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목지동은 목지촌(木池村)이라 하였으며, 부목리의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 마을 앞에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고, 그 숲속에 연못이 하나 있어서 목지(木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부목리는 대산리에 속해 있다가 조선 후기 리가 면으로 개칭되고 내대산면과 외대산면으로 분리되면서 내대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부군리에 내대산면의 면 청사가 개설되면서 내대산면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 다시 내대산면과 외대산면이 통합되어 대산면이 되면서 면 청사가 구혜리에 개설되어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부목리 부촌동에 위치한 도흥진(道興津)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合流)한 후 형성된 첫 번째 나루이다. 육로가 놓이기 전까지는 대산과 남지를 잇는 수로의 요지로서 칠서의 상포(上浦), 칠북의 매포(買浦) 등과 함께 남지영산 등지에서 장을 가는 행상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길목이었으나 지금은 쇠퇴하여 흔적만 남아 있다.
[자연환경]
부목리는 대산면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조금 하류에 위치한 곳으로 낙동강과 접하는 북쪽과 동쪽 일대는 잔구성 산지가 발달해 있고 산지들 사이에 침식 분지가 좁게 형성되어 있다. 부목리가 남서쪽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와 접하는 일대는 남강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기 전이며, 넓은 퇴적 평야가 발달해 있는데 이는 비가 많이 내려 남강과 낙동강의 유량이 불어나면 남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역류하면서 형성된 범람원이다.
[현황]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211가구에 395명[남 192명/여 20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목리는 부촌동·목지동·마산동의 3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세대와 인구는 부촌동이 가장 많다. 부목리에는 지방도 제1021호선이 부촌동 앞을 지나 횡단하며 남서쪽에서 북쪽으로 달리는 지방도 제60호선과 만나 부목 삼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에서 서북쪽으로 달리는 지방도 제1021호선 주변으로는 삼성 정밀, 감영 엠텍 가공 3공장, 대성 콘크리트, 승일 레미콘 등의 기업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