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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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池里 |
영어공식명칭 | Jangji-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장지리(長池里)에는 장명(長命)·남산(南山)·서잿골·쌀빗골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장명 마을은 옛날부터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장수를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남산 마을은 장명 마을의 남쪽 산자락에 입지한 마을이라 붙여진 지명이다. 서잿골 마을은 서재가 있던 장소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쌀빗골 마을은 쌀이 두 섬씩 날 정도로 농사가 잘 되던 쌀바대들이 있는 장소라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한다. 장지리의 지명은 장명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장명동(長命洞)은 군북면 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와 인접해 있고, 경지 정리 및 남강 유역 개발 공사 이전에는 허허벌판인 늪지에 불과하였다. 남산동(南山洞) 옆이 불매골, 한국 주강 뒤편 마을이 가마골(釜谷), 남해 고속 도로 옆이 유동(維洞), 남해 고속 도로 너머가 돌깨 마을[돌개 마을]이다. 돌깨는 야산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마을 앞으로 흐르는 하천 변에 바위가 뻗어 나와 물이 굽이쳐 흘러 작은 포(浦)를 이룬다고 하여 돌깨[石浦]라 불렀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경지 정리 이후 지형지물이 변형되었다.
유동은 유신(維新)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유신 정권(維新政權) 때 새로이 형성된 마을이다. 가마골(釜谷)앞산 기슭에 ‘부싯돌’이라는 돌이 있어 불을 지피는 불씨[성냥]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채화(採火)하여 썼다고 전해진다. 마을 앞산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형세가 가마솥과 같이 생겨 가마골이라 부르고, 가마솥 옆에 불을 피우는 모양을 닮은 작은 동네를 불매골이라 부른다. 1983년 장지리 장지동이 남산동과 장명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장지리는 삼봉산의 서쪽 비탈면 끝자락에 있다. 장지리의 서쪽에는 사촌천과 모로천이 합류해 형성된 석교천(石橋川)이 남강으로 흘러들기 전 형성해 놓은 범람원으로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다. 이 들을 쌀바다 또는 쌀바대들이라 부르며 현재에도 많은 양의 쌀이 생산되고 있다.
[현황]
장지리는 군북면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157가구에 288명[남 153명/여 13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로는 남산동과 장명동이 있다. 남산동에는 59가구에 107명이 살고 있으며 장명동에는 98가구에 181명이 살고 있어 남산동보다 장명동에 인구가 더 많다. 장지리는 동서로 남해 고속 도로가 관통하고 있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처럼 보이나 장지 나들목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여 많은 기업체들이 들어서 있으며 공업 지역의 경관도 나타나고 있다. 석교천의 범람원에서 재배되는 쌀의 양이 많아 국북 농협 기곡 가공 사업소가 있으며 콩나물 재배사, BHI, 한국 주강 등의 기업체들이 있다. 창원시 공업 지역의 이심 현상으로 함안군에 많은 기업체들이 들어서면서 함안군은 농업과 공업이 함께 발달하고 있으며 남초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