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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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山靜 |
영어공식명칭 | Choi Saniung |
이칭/별칭 | 국원(國垣),옥포(玉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 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출생 시기/일시 | 1535년 - 최산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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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0년 - 최산정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최산정 이천전투 승리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최산정 사망 |
출생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
사당|배향지 | 대산사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통천(通川) |
대표 관직 | 군자감주부 |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개설]
최산정(崔山靜)[1535~1593]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이천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이때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가계]
최산정의 본관은 통천(通川)이며 자는 국원(國垣), 호는 옥포(玉圃)이다. 할아버지는 최세진이며, 아버지는 최환성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와 해남윤씨(海南尹氏)이며, 아들은 최홍철·최홍진이다.
[활동 사항]
최산정은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일재(一齋) 이항(李恒)에게서 학문과 무예를 익혔고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궁궐 수문장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의주까지 수행하였으며, 뒤따르던 세자와 왕비가 고립되어 연락이 끊어지자 강원도 이천(伊川)으로 출진하여 최립(崔岦) 등과 함께 왜군 수십 명을 죽이고 군량과 병기를 빼앗아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다. 선조는 최산정의 공을 치하하며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에 임명하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최산정은 이듬해 조정이 한양으로 환도할 때 어머니의 생사가 걱정되어 귀향할 것을 청하였고, 선조가 이를 허락하여 해남으로 향하던 중 이천전투의 상처가 재발하여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산정은 사망한 뒤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봉되고 통정대부(通政大夫) 북도병마절도사(北道兵馬節度使)에 추증되었다. 최산정은 1862년(철종 13) 전라도 유림의 발의로 옥천군 대산면에 건립된 대산사(大山祠)에 양장공(襄莊公) 최운해(崔雲海)[1347~1404], 정렬공(貞烈公) 최윤덕(崔潤德)[1376~1445]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