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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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秀 |
영어공식명칭 | Lim Soo |
이칭/별칭 | 희암(希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경 |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가계]
임수(林秀)[1454~?]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희암(希巖)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임득무(林得茂)의 아들이다. 임수는 임우원(林遇元)·임우형(林遇亨)·임우리(林遇利)·임우정의 4형제를 두었다. 이들 중 임우형의 가계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임천령(林千齡)·임만령(林萬齡)·임억령(林億齡)·임백령(林百齡)·임구령(林九齡) 등 임우형의 다섯 아들 중 임억령·임백령·임구령이 관직에 진출하였다.
[활동 사항]
임수는 1454년(단종 2)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해남정씨(海南鄭氏) 정문명(鄭文明)의 사위가 되면서부터 해남과 인연을 맺었다. 해남정씨는 중앙 관직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였으며 15세기 이후 인근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 해남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획득하였다. 해남정씨와 혼인을 한 대표적인 가문은 강진의 탐진최씨(耽津崔氏)와 해남윤씨(海南尹氏), 영암의 선산임씨(善山林氏), 진도의 여흥민씨(驪興閔氏) 등이다.
임수는 1471년(성종 2)에 무과에 급제한 후 진안현감, 정평부사, 창평군수를 역임하였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따르면 1474년 11월 11일 병조는 임수 등 24명에게 직첩을 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외에 임수의 행적을 기록에서 찾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