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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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彦湜 |
영어공식명칭 | Cheong Eonsik |
이칭/별칭 | 청원(淸源),곡구(谷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경 |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가계]
정언식(鄭彦湜)[1538~?]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청원(淸源), 호는 곡구(谷口)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귀영(鄭貴瑛), 할아버지는 정자화(鄭自和), 아버지는 정공유(鄭公裕)이다. 형은 정언홍(鄭彦洪), 아우는 정언순(鄭彦淳)이다. 정언식은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문하생이자 증손녀사위이다.
[활동 사항]
정언식은 1538년(중종 33) 해남에서 태어났다. 1561년(명종 16) 생원과 진사가 되었으며, 1567년(선조 즉위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8년(선조 11) 남원판관(南原判官)으로 있을 때 용렬한 자로 몰려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벼슬은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이르렀다.
정언식의 스승이었던 임억령은 정언홍·정언식 형제가 과거에 낙방하자 이들을 위로하는 시 「쌍정낙제환향영정전벽도송원(雙鄭落第還鄕咏庭前碧桃送遠)」과 「증족질정언홍언식곤제(贈族姪鄭彥洪彥湜昆弟)」를 지어 주었다. 또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집(眉巖集』에는 1574년 윤12월 14일 기사에, “대제학 김귀영과 유희춘이 교서관(校書舘)으로 가서 포폄[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을 의논하면서, 정언식은 휴가를 받아 집에 있으면서 기한을 넘겼고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아 모두 의논해 중등(中等)에 두었다.”라는 정언식 관련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