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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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九齡 |
영어공식명칭 | Lim Guryeong |
이칭/별칭 | 연수(年樹),월당(月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윤섭 |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가계]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연수(年樹), 호는 월당(月堂)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고 어머니는 참봉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박씨(陰城朴氏)이다. 임천령(林千齡)·임만령(林萬齡)·임억령(林億齡)·임백령(林百齡)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임구령은 1501년(연산군 7) 전라도 해남에서 임우형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남원도호부사, 나주목사를 지냈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 이후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정3품 광주목사로 승진하였다. 을사사화 때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한 형 임억령과 달리 임구령은 임백령과 함께 시류에 편승하여 출세의 길을 걸었지만 사헌부·사간원의 탄핵과 1552년(명종 7) 2월 전라도관찰사 박수량(朴守良)의 상소로 광주목사에서 파직되었다. 1562년 사망하였다.
임구령은 해남에서 영암으로 이주하였는데, 1540년(중종 35)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영산강 하구의 대표적 간척지인 20만 평 규모 지남제(指南堤)를 주도하여 간척한 것으로 전한다.
[묘소]
임구령의 묘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영모정마을에 있다. 임구령 묘소는 조선 시대 초기 문관의 묘로 묘비, 장명등, 문인석 등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장례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다. 묘비 앞면에는 “유명조선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행 통덕랑 수성금화사별제 임공 휘 구령지묘/ 증 숙부인 난포박씨 부좌(有明朝鮮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叅贊官行通德郞修城禁火司別提林公諱九齡之墓/贈淑夫人蘭浦朴氏祔左)”라고 음각한 글씨 4행이 새겨져 있다.
[상훈과 추모]
임구령은 을사사화 뒤 위사공신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추증되었다.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영모정마을에 있는 월당영당(月堂影堂)에 임구령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