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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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百齡 |
영어공식명칭 | Lim Baekryeong |
이칭/별칭 | 인순(仁順),괴마(槐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윤섭 |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개설]
임백령(林百齡)[1498~1546]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문신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가계]
임백령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순(仁順)이며 호는 괴마(槐馬)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고 어머니는 참봉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박씨(陰城朴氏)이다. 형은 임천령(林千齡)·임만령(林萬齡)·임억령(林億齡), 동생은 임구령(林九齡)이다.
[활동 사항]
임백령은 1498년(연산군 4) 해남에서 태어나 박상(朴祥)의 문인이 되었다. 1516년(중종 11)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19년(중종 14) 식년문과에 갑과 3등으로 급제하여 상서원직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예문관검열을 거쳐 이듬해 홍문관저작으로 전임하였다. 1527년(중종 22) 사헌부지평·홍문관교리를 역임하고 영광군수로 부임했으며, 1532년(중종 27) 사헌부 장령·집의를 거쳐 1537년(중종 32)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또한 이듬해인 1538년(중종 33) 공조참판·사헌부대사헌·이조참판 등을 거쳐 1544년(중종 39)에는 대사헌·호조판서가 되었다.
임백령은 1545년 윤원형(尹元衡)·이기(李芑) 등과 모의해 윤임(尹任)·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을 사사하는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이 사건을 주도한 공로로 정난위사공신(定難衛社功臣) 1등에 책록되고 숭선군(崇善君)에 봉해졌으며, 보국숭록대부에까지 올랐다. 임백령은 우찬성의 지위로 사은사에 선발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1546년(명종 1) 귀국 도중 병들어 사망하였다.
[묘소]
임백령의 묘소는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부록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백령이 죽은 후 조정에서는 소이(昭夷)라는 시호를 내렸으나 문정왕후가 좋지 않다고 하여 문충(文忠)으로 고쳤다. 1570년(선조 3)에 이르러 을사간당으로 몰려 훈작이 삭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