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28
한자 有形遺産
영어공식명칭 Materiality of Inheritance
이칭/별칭 유형문화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태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개설]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수가 있다. 유형유산은 문화재보호법에서 유형문화재로 규정되어 있다.

문화재는 크게 유형유산·무형유산·자연 유산으로 분류된다. 유형유산은 역사적·과학적·예술적 관점에서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비명(碑銘), 동굴 생활의 흔적, 고고학적 특징을 지닌 건축물·조각·그림이나 이들의 복합물인 유적, 역사적·과학적·예술적 관점에서나 건축술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 인간 작업의 소산물이나 인간과 자연의 공동 소산물, 역사적·심미적·민족학적·인류학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적 장소를 포함한 지역과 주거 생활 등의 장소를 포함한다.

[국가 지정 문화재]

해남군 소재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국보는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2005년 9월 28일 지정]과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1987년 12월 26일 지정]이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바위 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 있는 마애불상으로,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상으로 규모가 크며 조각 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이다. 「윤두서자화상」공재 윤두서[1668~1715]가 직접 그린 자화상으로 윗부분을 생략한 탕건을 쓰고 눈은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앞면을 보고 있으며 수염은 터럭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표현 형식이나 기법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해남군 소재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은 19점이다. 건축 유형유산은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해남 미황사 대웅전[보물 제947호, 1988년 4월 1일], 해남 미황사 응진당[보물 제1183호, 1993년 11월 19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보물 제1347호, 2002년 12월 7일 지정], 해남 대흥사 천불전[보물 제1807호, 2013년 8월 5일 지정], 조각 유형 유산은 해남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1547호, 2008년 3월 12일 지정],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15호, 2011년 6월 21일 지정], 해남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863호, 2015년 3월 4일 지정], 회화 유형유산은 「미황사 괘불탱」[보물 제1342호, 2002년 7월 3일 지정],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552호, 2008년 3월 12일 지정],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보물 제481호, 1968년 12월 19일 지정], 공예 유형유산은 탑산사명 동종[보물 제88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전적 목판 고문서 유형유산은 윤선도 종가 문적[보물 제482호, 1968년 12월 19일 지정],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보물 제483호, 1968년 12월 19일 지정],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1357호, 2002년 12월 7일],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보물 제1667호, 2010년 10월 25일 지정],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제1959호, 2017년 12월 26일 지정], 금석문 유형유산은 해남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 1969년 6월 16일 지정] 등이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해남 대흥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이 서남단 지방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은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갖춘 석조탑으로, 각 부분에 표현된 다양한 조식은 다른 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일면을 지니고 있는 등 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해남 미황사 응진당은 조선 후기 18세기 중엽의 다표계 목조 건축의 기준작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주초석의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문양도 특징적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천불상을 봉안한 불전으로 건립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다.

해남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윤왕좌(輪王坐)의 조선 전기 조각 기법이 매우 우수하다. 해남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는 1612년에 조성하여 17세기 전반의 조각 문화사를 대표하는 불상이다.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50년에 조성하여 17세기 후반의 기준작이라 할 만하다. 해남 「미황사 괘불탱」은 1727년(영조 3)에 그렸는데, 본존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渲染)과 녹두색·분홍·황토색이 사용되어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 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은 18세기 대표적인 불화 작가인 색민의 대표작으로 선행 도상과 화풍을 잘 계승하고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은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화가로 인정받는 공재 윤두서가 남긴 것으로,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필력이 표현된 작품이다. 윤두서의 다양한 회화세계와 그림 솜씨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실학자적인 면도 나타나는 가치 있는 작품이다. 탑산사명 동종은 전체 형태는 상원사 동종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선을 갖고 있으며, 용뉴와 문양의 세부가 뛰어난 고려시대 범종 중에서도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걸작이다.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은 서산대사의 위상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은 고려시대 고문서로 희귀한 가치가 있고, 윤선도 종가 문적윤선도 등 조선시대 역사 인물과 세거성씨인 해남윤씨 관련된 문적으로 가치가 있다. 해남 명량대첩비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조선 수군, 특히 전라도 수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1686년(숙종 12)에 이민서(李敏敍)가 짓고 이정영(李正英)이 글씨를 써서 1688년에 세운 비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반출된 것을 1947년 주민이 합력하여 다시 돌아오게 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대흥사 대웅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은 중정식 가람배치의 전형을 보여 주며 경관과 조화되는 산사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대흥사 용화당[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은 불경을 배우는 학승들이 기거하는 선방 겸 강당 건물로 1813년(순조 13)에 중수하였다. 대흥사 대광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4호]은 1814년(헌종 7)에 중수한 건물로 초의선사가 직접 단청하였다고 하는데, 색채와 문양 면에 있어서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이다. 그리고 자연적인 곡선을 보이는 내부의 대들보도 특징적이다. 서동사 대웅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은 1870년(고종 7)에 중수한 3칸 맞배지붕 건물로 가구구조가 견실하다. 해남향교 대성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7호]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 전형적인 향교 대성전 양식을 하고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은 고려 초기 10~11세기에 조성한 신라 양식의 탑으로 자연 암반 위에 단층 기단부를 둔 것이 특징이다.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은 고려 중반기 12~13세기 조성한 석탑이며, 기단부를 튼튼하게 구성한 것과 초층 탑신을 세로로 세워서 결구한 보기 드문 양식을 하고 있다.

대흥사 천불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은 1817년(순조 17)에 경주에서 조성하여 배 2척으로 옮기던 중 768좌를 실은 배가 표류하여 일본으로 갔다가 1818년에 돌아와서 대흥사에 봉안되었다. 조성 당시 천불이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조성에 관한 기록과 표류 기록도 남아 있어 귀중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3호], 해남 미황사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해남 미황사 응진당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나한상 일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5호]은 18세기의 기준작이라 할 만하다.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은 당시 유행하던 철불좌상의 비로자나불로서 신라 말 고려 초의 철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대흥사 관음보살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9호]는 ‘십일면 천수관음보살도’와 ‘준제관음보살도’ 2폭이 전하는데, 초의선사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의의가 있다.

약수사 불교전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2호]은 목판본으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귀중본 7책[6종]이다. 해남 고산유고 목판 일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9호]은 윤선도의 문집으로 가치가 있다. 옥산서실 소장품 일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81호]은 조선시대 역사 인물 옥봉 백광훈과 관련된 문적과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 영산사 소장 문서 일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은 전란 중 왕명 하달 제도와 왕의 지시에 따른 군사 운영 등을 알 수 있어 임진왜란 연구를 보완할 수 있는 자료 가치가 있다. 노송사 소장 고문서[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2호]은 조선 후기 문관이 관직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축적해 둔 문서로 16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다양하고 제도사와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향토문화유산]

해남 이유길 유허비[향토문화유산 제1호]는 명량대첩에서 싸운 공과 1619년 건주(建州) 출병을 기념하기 위해 1893년 건립한 비로 당대 문장가 송병선이 지었다.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향토문화유산 제3호]는 1922년 이종철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진영전이 퇴락한 것을 목격하고 진영과 제기를 가져와 해남에서 봄가을로 향사한 것을 기념하여 1968년 세운 비이다. 화원 정어사 철비[향토문화유산 제18호]는 1794년(정조 18)에 세워진 정만석 어사 선정비로 흉년에 구휼미 300석을 내주어 기근을 면하게 하여 주민들이 세웠다. 문내 효자 조석창 감응비각[향토문화유산 제21호]은 효자 조석창이 꿈에 감응한 효행을 기려 1863년(철종 14)에 건립한 비와 비각이다. 효자 임근 묘갈명비[향토문화유산 제30호]는 효자 임근[1494~1549]의 묘갈명비로 1799년(정조 23) 건립하였고 조선 초기 인물의 효행 행적과 호남어사의 천거, 명종 임금의 치제와 명문 등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해남 황산면 도장사 본존불[향토문화유산 제7호]은 17세기 중반에 조성한 목조불로서 조각사적 가치가 있다. 해남 황산면 연당리 미륵불[향토문화유산 제8호]은 전라우수영과 통하는 남리역 근처에 있고 마을제를 지낸다. 해남 송천리 미륵불[향토문화유산 제11호]은 2.5m 크기 바위에 음각한 좌불 형상이다. 신안리 석불입상 및 석탑[향토문화유산 제24호]은 고려 중기에 조성한 석불 입상과 석탑이다. 해남 탑동 오층석탑[향토문화유산 제14호]은 고려 초기 양식의 석탑이다. 계곡 장흥임씨 당산마을 고문서 일괄[향토문화유산 제17호]은 모두 60여 권으로 장흥임씨 문중 기록과 마을 규칙을 담은 계문이며, 조선 후기 향촌 생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광보사 육경합부[향토문화유산 제35호]는 금강반야바라밀경,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대불정수능엄신주, 불설아미타경,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관세음보살예문 등이 합편된 불교경전으로 1465년(세조 11) 판본으로 보인다.

[비지정 문화재]

녹우당해남윤씨 고산 윤선도를 비롯한 해남윤씨 관련 고문서와 전적이 다수 있다. 고문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84년 조사하였는데, 1차 2,861건, 2차 55건 등 2,916건이 조사 대상이었다. 고문헌은 전라남도와 전남대학교 문헌정보연구소에서 2003년에 조사하였는데 모두 1,422책[445종]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지정문화재이다. 덕정의 장흥임씨가에 1664년(현종 5) 정월 16일에 화민 전군수 임국한 등이 투장과 관련하여 해남현감에게 올린 청원서, 1664년(현종 5) 정월 18일에 해남현에서 투장과 관련하여 유학 이▣재의 진술을 확인받은 초사(招辭), 1664년(현종 5) 4월에 해남현에서 임익한(任翊翰) 등에게 투장과 관련하여 발급한 입안(立案) 등 17세기 중반의 고문서가 있다. 원주이씨 이이림가에 1888년(고종 25) 12월에 해남현에서 마포면 덕인리에 사는 이군실에게 민영조의 유치조(留置租) 20석을 지체 없이 출급하라고 지시한 전령(傳令) 문서, 1889년(고종 26)에 표주(標主) 민현서, 민자선이 이군실에게 추거해 간 돈을 확인해 주는 수표(手標) 문서, 1892년(고종 29) 8월에 해남 마포면 덕인리에 사는 이재기가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의송(議送) 문서 등이 있다. 장흥임씨 임창완가에 1910년 임원규(任源圭) 민유임야약도(民有林野略圖) 등 근대문서가 있다. 원주이씨 이일구가에 1915년 5월 25일에 민병순(閔丙絢)이 해남군 마산면 복평리의 밭과 논에 대한 소유권 보존 증명을 해남군청에 신청한 증명신청서(證明申請書), 1915년 윤경하(尹檠夏) 매도증서(賣渡證書) 등의 문서류가 있다. 해남군의 사찰문화재는 문화재청과 조계종[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이 2006년에 조사하였다. 모두 3,965건으로, 조각 2,184건, 회화 67건, 공예 90건, 탑 석조 152건, 서지 934건, 서예 현판 123건, 복식 1건, 경판 414건 등이 있다. 이들 문화재도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지정문화재이다. 문내면 학동리에 있는 공적비군 등 곳곳에 있는 불망비, 선정비 등도 비지정문화재이다. 학동리 공적비는 수군절도사비 공적비 14기, 관찰사 공적비 3기, 현감 군수 공적비 3기, 수상국 어사 우후 등의 공적비 10기 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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