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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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原牧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문내면|황산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남주 |
건립 시기/일시 | 1445년 - 황원목장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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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황원목장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문내면|황산면 |
성격 | 목장 터 |
[정의]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된 목장.
[개설]
황원목장(黃原牧場)은 현재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황산면, 문내면, 화원면]에 설치된 목장이다. 1445년 건립되었다.
[변천]
1445년(세종 27) 10월 9일에 하삼도순찰사 김종서가 각지의 목장 적임지에 대해 아뢸 때 “영암군의 황원곶[黃原串]은 4,000필을 놓을 수 있는데, 거민 400여 호가 바닷가에 흩어져 살고 있으므로, 사방에 구원(救援)이 없어 해적(海賊)이 두렵사오니, 모두 다 내어 보내고 목장을 쌓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어서 1446년 황원목장에 관한 일은 영암군사(靈巖郡事)에게 겸임하게 하였다. 성종 무렵에는 1,500여 필을 방목하였으며, 중종 때는 노화도와 소안도에서 방목하던 말까지 옮겨 왔다. 1454년(단종 2) 6월에는 황산면 송호리에 목장성을 축성하였으며, 17세기 무렵에는 진도의 감목관이 황원에 설치되어 진도목장까지 관할하였다. 1462년(세조 8) 가을에는 진도(珍島)의 군민(郡民)을 황원곶이목장(黃原串 牧場)에 이주시키고, 대신에 말[馬]은 진도에 옮기게 하였다가 중단하였다. 1470년(성종 1)년 1월에 황원 목장에서 방목한 말은 1,449필이었는데 확인하니 잃어버린 숫자는 152필이었다. 1510년에 이르러 노도(露島)[현재의 완도군 노화도]·달목도(達木島)[현재의 완도군 소안도]에서 방목하던 말 130필을 황원의 마원(馬原)에 옮기어 말을 번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17세기에 진도군 지력산 목장을 관리하던 진도감목관 관아가 황원으로 이동되었다.
관련 기록은 『정조실록』과 선정비로 확인된다. 1794년(정조 18) 12월 호남위유사 서영보의 별단에 의하면 진도(珍島)의 목관(牧官) 소재지인 장내면(場內面)은 행정상 해남현(海南縣)에 속한 땅으로 거리가 90여 리[약 35㎞]나 된다. 1795년 5월 남 암행어사 정만석이 올린 별단에서 “진도(珍島)의 감목관(監牧官)은 해남(海南)의 화원목장(花源牧場)에 있는데 진도와는 70리[약 27㎞]나 떨어져 있으므로 거행하는 일에 대해서 일체 검찰(檢察)할 길이 없으니 목관(牧官)을 옮겨 [진도에] 설치하거나 혹은 진도군에 합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정만석은 진도목장을 관할하는 감목관이 황원에 있는 폐단을 지적하고 진도로 옮기자고 하였지만 정만석의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감목관은 구한말까지 황원에 그대로 있었다.
[위치]
황원목장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문내면, 황산면 일원에 설치되었다.
[의의와 평가]
황원목장은 조선시대 해남 지역에 설치되었던 유일한 목장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