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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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山縣 |
영어공식명칭 | Oksa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삼산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한정훈 |
관할 지역 | 옥산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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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과 삼산면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고려시대 옥산현(玉山縣)에 관한 기록은 전무하나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위치 및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신라기의 사라향(沙羅鄕)이 고려시대에 옥산현으로 승격한 것은 옥산현 지역이 고려 왕조에 일정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고, 조선 초기에 해남현으로 편입된 것은 옥산현[세력]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련 기록]
“태종 12년(1412)에 해남현의 치소(治所)를 영암에 딸린 현 옥산(玉山) 땅에 옮겼다가 세종 19년(1437)에 다시 (해남현과 진도현을) 가르고 현감으로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7, 해남현 건치연혁]
“옥산(玉山) 폐현은 (해남현)의 남쪽 10리[약 3.93㎞]에 있다. 옛날의 사라향(沙羅鄕)이었는데,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되었으며, 지금은 본 현의 치소로 되어 있다.”[고적]
[내용]
고려시대 옥산현은 영암군의 속현으로 통일신라 때에는 사라향이었다고 한다. 조선 1409년에 진도현과 해남현을 합하여 해진군(海珍郡)으로 만들고, 1412년(태종 12)에는 영암군의 옛 속현인 죽산현·황원현과 함께 옥산현도 해진군(海珍郡)에 편입되면서 그 치소를 옥산(玉山) 땅으로 옮겼다. 물론 당시 해진군의 치소가 된 현재의 해남읍 지역은 당시 옥산현의 중심부가 아니었으며, 통합된 해진현의 읍세(邑勢)를 바탕으로 한층 넓고 안전한 내륙 지역으로 선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성곽 유적과 유적 분포 상태로 미루어 볼 때에 옥산현의 중심 치소는 현재의 삼산면 상가리 계동 성뫼산 일대나 해남읍 남연리~삼산면 창리 일대로 보고 있다. 특히 삼산면 상가리 계동의 동산성(東山城)을 옥산고성지로 비정 가능하다. 산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인 동산성이 있는 성뫼산[해발 90m]은 해남읍과 삼산면의 경계 지역이며, 정상에 오르면 해남읍을 비롯하여 사방이 눈에 들어온다. 총연장 450m의 원형 성지인 동산성에서는 고려시대의 청자 기와편과 조선시대 와당 등이 발견되었다.
[변천]
통일신라 시기에는 사라향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영암군의 속현인 옥산현이 되었다. 조선 태종 대에 진도현, 해남현과 합쳐져 해진군이 되었다가, 해진군이 다시 진도현과 해남현으로 복원되면서 옥산현은 해남현에 편입되었다.
[의의와 평가]
옥산현의 변천 과정은 주군인 영암군과 속현에 해당하는 해남 지역의 영속 관계, 고해남현에서 해남현으로 치소 이동 과정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