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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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海南縣 |
영어공식명칭 | Gohaenam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정훈 |
관할 지역 | 고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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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와 조선 초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에 치소를 두었던 옛 해남 행정구역.
[개설]
고려 태조 대에 통일신라 때의 침명현(浸溟縣)을 해남현(海南縣)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해남현의 치소는 현산면 고현리였다. 하지만 고려 말·조선 초 왜구의 침략으로 진도현과 통합·분리 혹은 치소의 이동을 거친 이후, 세종 대에 현재의 해남읍으로 치소가 확정되고 해남읍성도 축조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까지 현산면 고현리에 있던 해남현이 태종대에 삼산면 계동으로 옮긴 이유는 왜구의 침략으로 인한 내륙 쪽으로의 이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종 대에 다시 지금의 해남읍으로 옮긴 것은 넓어진 해남현 관내를 더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조치였다.
[관련 기록]
“고해남(古海南)은 두륜산 남쪽에 있다. 땅이 곧 바닷가에 임하였으며, 성터가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37권, 전라도 해남현 고적.]
“고해남성(古海南城)은 두륜산(頭輪山)의 남쪽에 있다.”[『대동지지(大東地志)』 해남현.]
[내용]
백제 때 새금현, 신라 때에는 침명현[『고려사』 지리지에는 투빈이라고도 함]이던 명칭이 고려시대에는 해남현으로 변경되었다. 해남현의 치소는 현산면 고현리에 자리하였는데. 현재의 현산면 일평리 성지 또는 읍호토성이 그 유지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동헌터, 둔전, 사창들, 소반청[형방청], 옥안배미[감옥], 소안골[향교가 있음], 서당골[관서재골]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행자목(杏子木)이 있는 현산면 현내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옛 해남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주변의 일부 마을을 통합하여 고현리(古縣里)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37권 전라도 해남현]에 의하면 해남현은 1409년(태종 9)에 진도군과 합쳐 해진현(海珍縣)이 되었다. 1412년(태종 12)에 현산면 고현에 있던 치소를 영암 땅 옥산으로 옮겼는데, 지금의 삼산면 계동이다. 치소를 현산면 고현에서 삼산면 계동으로 이전한 것은 여말 선초 시기 왜구의 잦은 침략에 해안가와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을 취하면서 바닷가에 있던 치소를 육지 쪽으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바닷가의 고현 치소 역시 육지 안쪽인 계동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군현의 일방적인 병합, 그리고 먼 곳으로 읍치를 옮긴 것이 군현 사정을 어렵게 하고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여 1437년(세종 19)에 다시 이전처럼 해남현과 진도군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해남현이 진도현과 분리된 이후 치소를 현재의 해남읍으로 이전하고 해남읍성이 축조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세종 대에 대대적으로 있었던 다른 고을의 읍성 축조와 때를 같이하는 것이라 하겠다. 세종 대 군현 병합에 따라 갑자기 넓어진 해남현 영역을 원활히 다스리기 위해 삼산면 계동에 있던 치소를 현재의 해남읍으로 이전한 것이다. 이 당시 해남현은 현재의 해남 영역과 거의 비슷한 범위를 갖게 되었고 조선 말까지 커다란 변화 없이 존속하였다.
[변천]
백제 때는 새금현, 신라 때는 침명현이었다가 고려시대에 해남현이라 하였다. 다만 고려시대의 해남현 치소는 현산면 고현리이었고, 조선 태종 대 삼산면 계동을 거쳐 세종 대에 현재의 해남읍으로 옮겨 왔다.
[의의와 평가]
해남의 역사 근간을 알려주는 고해남현의 역사상을 복원하기 위해 현산면 고현리 일대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