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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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鄭氏 |
영어의미역 | Hadong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박용국 |
세거|집성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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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정도정 |
입향 시조 | 정도정 |
[정의]
정도정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개설]
하동 정씨는 하동의 토성(土姓)이다. 따라서 하동 정씨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동 정씨는 통일 신라의 군현 체제에서 촌주 세력으로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신라 말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동 지역의 중소 호족 세력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을 재편할 때 토성을 받아서 재지 세력화하였으며, 하동 정씨가 그 대표적인 세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원]
하동 정씨는 계통을 달리하는 세 개 파가 있다. 먼저 정도정(鄭道正)은 신라 진성왕 때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호장(河東戶長)이 되어 향병(鄕兵)을 단련하여 하동성(河東城)을 지켰다고 한다.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경순왕을 개성까지 호위하여 내의성상시(內議省常侍), 광평성평장사(廣評省平章事)에 올랐던 인물로 전해 온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가 없으나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다음으로 정응(鄭膺)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도첨의좌정승(都僉議左政丞)을 지냈으며, 한때 태자관(太子官)의 첨사(詹事)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손위(鄭遜位)는 고려 숙종·예종·인종·의종·명종 등 5왕조에서 벼슬을 하였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지예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鷹揚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며 하동백(河東伯)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하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들 정세유(鄭世裕)는 명종 때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를 거쳐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입향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하동현의 인물조에 정지연(鄭芝衍)의 아버지 정국룡(鄭國龍)이 현리(縣吏)로 기록되어 있다. 향리의 뿌리는 나말 여초 호족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하동 정씨가 신라 말 이래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 하동군은 진주목의 속군으로서 행정을 재지 세력인 향리가 담당하였다. 명종 때 감무를 두면서 속군의 지위에서 벗어나 이후 주현으로 상승해 갔다. 이는 12세기 이후 하동 정씨의 번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려 시대 대표적인 하동의 인물로는 정지연 이외에 『고려사(高麗史)』 열전에 보이는 정세유와 정지상(鄭之祥),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하동현의 상경종사조(上京從仕條)에는 고려 원종 때의 인물로 정숙첨(鄭淑瞻), 공민왕 때의 인물로 정방길(鄭方吉), 『신증동국여지승람』 하동현의 인물조에 정안(鄭晏)·정지상·정혼(鄭渾)이 보인다. 요컨대 하동은 고려 초기부터 4개의 성씨 집단이 유력한 토착 세력으로 존재하였으며, 특히 정씨가 그 세력을 대표하였음을 토성 명현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성씨와 본관 통계에 의하면 하동 정씨는 전국에 모두 4만 9440가구 15만 8396명이며, 하동 지역에 거주하는 하동 정씨가 181가구 486명이다. 하동 정씨 집성촌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을 들 수 있다. 이들 하동 정씨들은 하동 지역을 식읍으로 삼았던 하동 정씨 시조 정도정의 후손들이 집단으로 터를 잡아 촌락을 이루었던 것이다. 20세기 대표적인 한국의 기업가인 고 정주영(鄭周永)이 하동 정씨이다.
[관련 유적]
하동 정씨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2006년 1월 1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61호로 지정된 하동 동리 방형분 3기와 묘역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 산1-6번지에는 정국룡과 그의 둘째 아들 정난연(鄭蘭衍)의 묘가 같은 묘역에서 상하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첫째 아들 정지연의 묘는 그곳으로부터 북쪽으로 80m 떨어진 하동군 적량면 동리 산1-5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에 동족촌을 이룬 하동 정씨들은 1600년경 처사 정홍장(鄭泓長)의 후손들이 조상을 기리는 묘하각으로 영모재(永慕齋)를 건립하고 세거함으로써 하동 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전체 60여 가구에 하동 정씨와 특수 관계를 맺은 가구가 30여 호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