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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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寧余氏 |
영어의미역 | Uiryeong Y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용국 |
입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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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
세거|집성지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화심마을 |
성씨 시조 | 여선재 |
입향 시조 | 여승탁 |
[정의]
여선재를 시조로 하고 여승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개설]
의령 여씨(宜寧余氏)는 여선재(余善才)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이후 세계(世系)를 잃어버려서 여현경(余玄景)을 1세(世)로 하여 세계를 이루고 있다. 하동 지역에 의령 여씨가 입향한 시기는 연산군 때이다.
[연원]
의춘은 의령(宜寧)의 옛 이름인데, 여선재의 후손들이 의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여선재의 아들 여영후(余英候)를 시조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한 여현경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이루고 있다.
[입향 경위]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이미 의령 여씨가 하동 지역의 세력 가문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 연산군 때 여승탁(余承鐸)이 의령에서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로 옮겨 왔다.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는 1750년(영조 26) 무렵 여승탁의 후손이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의령 여씨의 대표적인 세거지가 되었다.
[현황]
통계청의 성씨와 본관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전국의 의령 여씨는 5,180가구 모두 1만 6477명이며, 하동에 거주하는 의령 여씨가 225가구 545명이다. 하동 지역 의령 여씨 세거지는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이다. 화심마을은 100여 년 전부터 대외적으로 의령 여씨 세거동으로 알려졌으며, 마을 전체 89가구 가운데 50여 가구가 의령 여씨이다.
[관련 유적]
화심마을 양심재(養心齋)는 의령 여씨들이 입향조를 받들고 후손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건립한 학숙소를 겸한 재실이다. 최익현(崔益鉉)은 양심재에 들렀다가 「양심재염심자(養心齋拈心字)」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화심마을에는 만석꾼으로 알려진 참봉 여종엽(余宗燁)이 살았던 집터와 잔존 건물이 남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