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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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崔氏 |
영어의미역 | Gyeongju Cho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용국 |
입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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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호암 |
세거|집성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
세거|집성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
성씨 시조 | 최치원 |
입향 시조 | 최상순|최영달 |
[정의]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상순·최영달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최씨의 세계(世系)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26파로 나뉘는데, 그 중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광정공파(匡靖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사성공파(司成公派)·화숙공파(和淑公派)·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대 파가 주축을 이룬다. 하동 지역의 경주 최씨는 전라남도 보성과 경상남도 곤양에서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와 양보면 운암리로 각각 이거하여 세계를 이루었다.
[연원]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시조 혁거세왕’ 편에는 “사로 6촌 가운데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본피부]의 촌장 지백호(智伯虎)가 화산(花山)에 내려와서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는데,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국의 최씨 가운데 지백호를 원조(元祖)로 하는 경주 최씨가 거의 태반을 차지할 정도로 번성했다. 경주 최씨는 원조 이후 24세손 최치원까지 세계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사실상 최치원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루고 있다. 하동 지역의 경주 최씨는 최치원의 초상화를 받들면서 근원을 드러내고 있다.
[입향 경위]
하동 지역의 경주 최씨는 조선 중기 최윤추(崔允樞)의 아들 가선대부 최상순(崔相淳)이 곤양에서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마을로 옮겨와 세거하였다. 또한 최영달(崔永達)이 13세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호암으로 이거해 왔다고 한다.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양보면 운암리에 동족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통계청의 성씨와 본관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전국의 경주 최씨는 3만 4772가구 모두 97만 6820명이며, 하동에 거주하는 경주 최씨가 344가구 968명이다. 하동 지역 경주 최씨의 대표적인 세거지는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마을이다. 마을 규모가 큰 편은 아니나 모두 39가구 가운데 31호가 경주 최씨이다.
[관련 유적]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마을에는 최치원의 초상화를 모신 운암영당(雲岩影堂)이 있다. 최치원의 초상화는 1924년 운암영당으로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1979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다. 지내마을 경주 최씨 문중에서는 묘하각(墓下閣)으로 영모재(永慕齋)를 건립하여 입향조를 비롯한 조상들을 시향(時享)하는 재숙소(齋宿所)로 삼고 있다. 이외에 하동 지역의 최치원 관련 유적으로는 ‘쌍계사 석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