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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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坪里 |
영어음역 | Gwangpy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석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일제 강점기에 본래 명칭인 ‘너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넓을 ‘광(廣)’자와 벌 ‘평(坪)’자를 써서 광평(廣坪)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광평동(廣坪洞)과 원동(院洞)이 합쳐져 광평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섬진강이 형성한 충적 평야 지대로 1926년과 1927년에 각각 비파제방과 신기제방을 축조한 뒤 농경지로 개간되었다. 섬진강이 북서쪽에서 흘러 와서 광평리를 감싸고 남쪽으로 흘러 나간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이다. 북천면 옥정리로 이어지는 국도 2호선이 지나며, 전라남도 광양시와 연결되는 섬진교와 섬진철교가 지난다.
[현황]
광평리는 하동읍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3월 31일 현재 면적은 1.01㎢로 이 중 밭이 0.12㎢, 논이 0.12㎢, 임야가 0.06㎢이며 총 780가구에 2,087명[남자 1,012명, 여자 1,0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비파리·읍내리와 이웃하고, 남당(南堂)·광원·원광평·광평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광평은 옛 국도의 길목으로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섬진강 수운을 이용한 시장이 번성했던 곳이다. 또한 동학 농민 운동의 현장으로서 동학 접주 박정주가 영남의소를 설치한 곳이기도 하다. 광원은 섬진원(蟾津院)이 있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으로 달리 원동이라고도 하였다. 남당은 조선 후기에 10여 호가 마을을 이루어 불무골이라고 하였다가 신기제방을 축조해 수해에서 벗어난 뒤 1939년 30여 호로 급증하면서 마을 이름을 남당으로 고쳤다.
광평리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하동출장소, 한국국토정보공사 하동군지사, 한국농어촌공사 경남지역본부 하동·남해지사, 한국전력공사 경남사업본부 하동지점 등 관공서가 있다. 군민의 휴식처인 천연기념물 제445호 하동 송림이 있으며, 문화 유적으로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인 광평리 유물 산포지(1)와 삼국시대의 유적지인 광평리 유물 산포지(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