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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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伏龍山風水 |
이칭/별칭 | 무제봉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동|지죽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수 |
전구간 | 복룡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동|지죽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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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풍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동과 지죽동 경계에 있는 복룡산에 대한 풍수 해석.
[개설]
복룡산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동과 지죽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명칭 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복룡폐현(伏龍廢縣)은 본래 백제 때 복룡현이며, 일명 배룡(盃龍)이라고도 하다가 신라 때 용산(龍山)으로 고쳐 무주의 영현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복룡은 강변에 엎드려 솟은 산을 주로 지칭한다. 기우제를 올려 ‘무제봉’이라고도 한다.
[자연환경]
금성산으로 향하던 능선이 동쪽 희여치를 거쳐 황룡강과 평림천이 합류하는 염해평 남쪽에 솟아 있다.
[현황]
복룡산 정상[228m]에 봉화대를 겸한 성터가 있다. 견훤이 왕건에 쫓기다가 ‘함적굴’ 아래에서 크게 진 뒤, 나주 노안 천동으로 갔다고 한다. 함적굴 ‘점등’은 백자 관요터이다. 복룡현은 고려 때 나주 평구부곡(平丘部曲)이 되었다가 조선시대 직촌화로 폐지되었다. 용동 455번지 관골마을 일대는 남산봉과 소다리봉 사이에 후백제 때 것이라고 전하는 성터가 있고, 옥등괘벽(玉燈掛壁)의 명당터가 있다고 한다.
마을 어귀 저수지 밑 선돌에 복룡현의 관아터임을 알리는 글이 새겨져 있고, 앞들은 ‘오박굴들’이라고 부른다. 옥밭을 뜻하고 옥터로 여겨지는 흔적들이 논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기곡마을 앞쪽 용곡동 713번지와 광산김씨 선산에 해당된 곳이 관아터라는 주장도 있다. 덤벙주초석 7~8개와 함께 언덕에서 고식 기와조각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신원터’라고 칭하고 있어, 관아의 중심이 관골마을에 있다가 뒤에 옮겨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