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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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燾圭 |
영어공식명칭 | Na Dogyu |
이칭/별칭 | 치문(致文),덕암(德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문다성 |
출생 시기/일시 | 1826년 - 나도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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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64년 - 나도규 남덕정 건립 |
몰년 시기/일시 | 1885년 3월 - 나도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09년 - 나도규 행장 작성 |
출생지 | 내동리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촌동 |
수학|강학지 | 남덕정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2길 10[석정동 120-1] |
묘소|단소 | 석정(石亭)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나주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학자.
[가계]
나도규(羅燾圭)[1826~1885]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치문(致文), 호는 덕암(德岩)이며. 할아버지는 나석증(羅錫曾)이다. 아버지는 나희집(羅禧集)이며, 어머니는 이현임(李鉉臨)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나도규는 1826년(순조 26) 전라도 광주(光州) 광산구(光山區) 대촌면(大村面)[또는 계촌면(桂村面) 내동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나희집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1841년(헌종 7) 아버지가 사망하자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상례를 치렀다. 이후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 되어 여러 경전과 문인의 글을 배웠으며 예학을 탐구하였다. 1851년(철종 2) 「항검자설(恒儉字說)」을 지었고, 이어 1852년(철종 3)에 「촌자설(村字說)」, 1853년(철종 4)에는 「심학도설(心學圖說)」을 지었다. 특히, 스승인 기정진과 태극음양(太極陰陽)의 이치를 논하는 과정에서 인정받아 향도천(鄕道薦)에 올랐다.
나도규는 1864년 강학소인 남덕정(覽德亭)[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을 건립하여 문하생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며 수많은 지역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일생을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지내며 성리학 연구 및 광주 지역의 일에 관여하였다. 1879년(고종 16) 12월에 스승 기정진의 장례 때 통유문(通諭文)과 집상제문(執喪諸文)을 직접 주관하였으며, 「성기잠(誠幾箴)」을 지었다. 1885년(고종 22) 3월 고내상(古內廂) 도산촌(道山村)에서 60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손자 나종우가 나도규의 유고를 정리한 시문집 『덕암만록(德巖漫錄)』 상·하권이 남아 있는데, 『덕암만록』에는 무등산 유람기를 비롯한 시 302수, 서 88편, 설 10편, 서 20편, 기 34편 등 다수의 글의 수록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나도규의 지역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묘소]
1885년(고종 22) 9월에 복룡산(伏龍山)[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장사 지냈다가 1890년(고종 27) 석정(石亭) 옛집 근처로 이장(移葬)하였다.
[상훈과 추모]
나도규의 행장은 1909년에 후학인 고광선이 작성하였으며, 서(序)는 고광선과 고광익이 1921년과 1922년에 각각 서술하였다. 1998년 김은수는 『한국 한시의 이해』에 나도규의 문집 가운데 시를 발췌·번역하여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