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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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盜賊-漆石洞堂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칠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염승연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 - 「도적을 잡은 칠석동 당산나무」 광주광역시 칠석마을에 거주하는 이인식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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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도적을 잡은 칠석동 당산나무」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칠석마을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120 |
채록지 | 칠석마을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120 |
성격 | 설화|전설|영험담 |
주요 등장 인물 | 당산나무|도적 |
모티프 유형 | 영험성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당산나무에 관한 이야기.
[개설]
「도적을 잡은 칠석동 당산나무」는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에 있는 당산나무와 그 나무를 지나다가 봉변을 당한 도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에서 이인식의 이야기를 채록하였고,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옷돌[칠석]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소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와우상(臥牛相) 형상이어서 터가 거세다고 한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터의 거센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 매년 정월에 당산제를 하고, 마당밟이 굿을 치며 고싸움 놀이를 했다. 칠석마을의 당산제는 마을 위 할아버지당인 소나무와 마을 앞 할머니당인 은행나무에서 지냈다. 할아버지당은 술도 안 마시고 비린 것도 먹지 않아 무나물과 미역국, 냉수로만 제사를 지냈다. 반면에 할머니당은 술과 고기를 다 잘 먹어서 푸짐하게 장만하여 정성껏 지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당산제를 정성껏 지내고 있다.
어느 해의 당산제에서는 세 사람이 색깔 있는 잉크를 가져와 주변에 뿌렸다고 한다. 그때 붉은 잉크를 뿌린 사람은 집에 불이 나서 망하고, 파란 잉크를 뿌린 사람은 목수가 사용하는 옥자귀에 찍혀 불구가 되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아버지가 정신이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 셋이 당산나무에 올라가 똥을 싸다가 가지가 부러져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상처를 입기도 했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도적질을 하고 당산나무 앞을 지나가던 도적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당산나무에게 붙잡혀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모티프 분석]
「도적을 잡은 칠석동 당산나무」의 주요 모티프는 '당산나무의 영험성'이다. 칠석마을은 죽령산(竹嶺山) 아래의 평야지대에 있다. 그러나 풍수지리에 따르면 소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그 터의 기운이 드셌기 때문에 이 소를 잡아두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인 은행나무에 정월 대보름마다 제를 지냈다. 마을 최대 행사인 고싸움놀이를 하기 전에도 고를 들고 당산나무 둘레를 도는 등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를 신성하게 여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화를 당하는 모습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의 영험성을 믿고 당산나무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