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B01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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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다일 |
200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가리봉동을 찾고 있다. 가리봉동이 재개발되기 전에 그 모습을 기록하려고 찾아온 대학생도 있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가리봉동의 상징인 벌집촌을 도면으로 그려 냈고, 어느 대학원생은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주 상황을 논문으로 기록했다. 학술적인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과 50년의 짧은 시간 동안 농촌에서 도시로 바뀐 가리봉동을 예술의 관점에서 풀어 보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급변하는 가리봉동의 역사를 기록하다]
어쨌거나 가리봉동에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면 토박이를 찾아가 소개받는 것이 제일 좋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리봉동에 대해 알아보려고 꼭 거치는 곳이 있다. 이른바 가리봉동의 사랑방이라 불리는 곳, 가리봉시장 입구에 있는 ‘중국동포타운센터’가 그곳이다. 여기서는 중국 동포들의 취업, 비자와 같은 생활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 주기도 하고, 가리봉동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동포들의 소식을 모아 『중국동포타운신문』도 발행한다.
그래서 이곳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김용필[1970년생] 씨는 마당발로 통한다.
김용필 편집장의 사무실은 넓은 방으로 되어 있다. 회의를 위한 테이블도 있고 넓은 책상도 있다. 취재하고 글을 써야 하는 편집장의 방이라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시간 정도 김용필 편집장과 대화를 나눠 본 뒤로는 방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말 그대로 방문은 닫혀 있을 틈이 없었다.
먼저 중국 동포들이 상담을 위해 수시로 찾아왔다. 게다가 사무실 전화까지 심심치 않게 울린다. 거기에 편집장의 핸드폰까지 울리니 마주 앉아 대화하는 사람은 불쑥 찾아오는 사람과 전화기에 대화 순서가 밀렸다. 사무실에 접이식 침대와 여행 가방도 있는 것으로 보아 밤샘 작업도 많고 매우 바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용필 편집장이 바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7년째 가리봉동에서 신문을 만들고 있는 김용필 편집장은 말 그대로 가리봉동의 소식통이다.
전문가다. 한 지역에서 여러 소식을 듣고 신문을 만들었고,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가리봉동 소식이 손바닥 안에 빠삭하게 들어온다. 그래서 누가 어떤 이유로 가리봉을 찾아왔건 간에 『중국동포타운신문』을 제작하는 김용필 편집장을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다른 사람부터 만난다고 해도 어차피 두어 번 소개받으면 다시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바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왜 가리봉동으로 찾아오는가?]
그런데 김용필 편집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의외로 다양했다. 중국 동포들이야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받으러 많이 찾아온다. 그 외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논문을 쓰는 대학생도 찾아오고, 가리봉동을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알리고자 하는 기자들부터 현재의 생활을 기록하고자 하는 예술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가리봉동을 찾고 있었다. 필자 역시 가리봉동 취재를 위해 몇 군데 길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 편집장은 만나봤어요?”라는 말에 김용필 편집장을 찾아갔다.
김용필 편집장의 말로는 가리봉동을 찾아온 사람들의 얘기만 묶어도 재밌는 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왜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가리봉동을 찾아오는가? 그들은 여기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좁은 벌집과 무너진 상권을 가진 시장, 1/4이나 되는 중국 국적 사람들이 사는 곳에 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올까?
해답은 가리봉동이 갖고 있는 상징성에 있었다. 금천예술공장에서 ‘가리봉동 옌벤타운’을 주제로 설치 미술을 하고 있는 작가 이수영[1967년생] 씨는 “격동의 시기를 겪은 가리봉동이 또다시 재개발과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며 “작가로서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가리봉동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수영 씨는 가리봉동 조선족 식당에서 만난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하여 『가리봉동진달래반점』이란 이름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가리봉동을 연구 중인 학생’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경로로 여기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가 연구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가리봉동은 196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수많은 청년들의 일자리가 됐고, 1990년대 이후엔 공장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를 중국 동포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2010년으로 들어서며 가리봉동은 재개발이란 또 다른 역사와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또 떠나가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앞으로 지켜 볼 일이라는 것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