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B01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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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다일 |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몇 십 년 만에 도시화가 이루어진 가리봉동 여기저기에는 생채기와 같은 역사가 남아 있다. 교회에도 남아 있고, 나무에도 남아 있다. 학교 운동장에도 남아 있고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에도 역사는 남았다. “서울에서 무슨 마을 역사를 찾는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역사는 남아 있는 법이다.
산업화를 일궈 낸 젊은 여공들의 역사가 가리봉동 구석구석에 남아 있고, 수백 년 조상들이 지켜 온 땅에 공장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지어진 것을 바라본 노인의 기억 속에도 역사는 남아 있었다. 일견 훑어보고 지나가는 동네가 아닌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순간 세상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벌집과 중국 음식으로 대변되는 곳]
“여기 옌벤거리가 어디예요?”
가리봉동 파출소 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문을 열고 물어 본 얘기다.
주말이라 그런지 손에는 카메라를 들었고, 얼굴에는 나들이를 나온 여유가 풍겨 나온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진 가리봉동의 최근 모습은 바로 ‘옌벤거리’다.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 자치구를 중국 발음으로 부른 것이 ‘옌벤’이다. 가리봉동에 조선족이 모여 살기 시작한 지는 10여 년 남짓. 그 동안 지역의 문화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점이 생겨났고, 시장은 중국 사람들을 위한 물건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 독특한 문화의 거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리봉동을 한눈에 쉽게 돌아볼 수 있는 요령을 알아본다.
[남구로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가리봉동 나들이]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4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가리봉 특유의 어수선함이 느껴진다.
무언가 한국 땅이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은행 간판에도 중국말이 쓰여 있고 가게 입구에도 한자투성이다. 정규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했지만 한자를 읽을 수 없다. 중국어 약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색달라 보인다.
가리봉동을 돌아보려면 남구로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의 동선이 지하철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구로역 4번 출구를 나와 남쪽의 가리봉시장 입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평 남짓 한 가게들이 늘어섰다. 시장 입구 사거리에서 왼쪽 시장을 천천히 살펴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북적이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이고 길거리에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좌판에는 만두를 비롯한 음식들이 가득하다. 수북하게 쌓아 놓은 음식들은 이름조차 알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이 먹는 것이려니’ 하고 용감하게 가게로 들어섰다.
[가리봉시장에서 맛보는 중국 음식]
가리봉시장 의 중국 음식점에는 소위 ‘서비스’ 메뉴가 있다.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이 해파리냉채, 우뭇가사리무침 등 매번 메뉴가 바뀌는 서비스 음식이다. 서툴게 한국말을 하는 가게 주인과 협의 끝에 중국식 탕수육 ‘꿔바로우’와 물만두를 주문했다. 익숙한 물만두는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내친 김에 맥주도 한 병 주문했다. 중국의 유명한 ‘칭다오 맥주’가 나왔다.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니 여기가 한국 땅인지 다시 한 번 어리둥절해진다. 음식 맛은 한국인의 입맛과 맞는 것도, 아닌 것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또한 가게마다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맛에 대해 논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다. 하지만 맛있는 식사를 했고 요리 두 개와 맥주까지 합쳐 2만 원 조금 넘게 나왔다. 가격은 확실히 저렴한 편이었다.
가리봉동의 중국 음식은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춘 것이 아니다. 주로 조선족의 입맛에 맞춘 것이고, 특별한 요리들로 만족이나 한족의 전통 요리를 내놓은 곳도 있다. 간판이나 메뉴가 중국어로 쓰여 있으니 처음 간 사람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음식점 주인들은 겉으로는 툴툴거리는 듯한 억양의 중국어로 손님을 맞이하지만 차근차근 얘기해 보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값도 저렴하니 적은 양의 메뉴를 여러 가지 시켜 보는 것도 좋다.
[시장을 지나 벌집촌 둘러보기]
시장 길은 복잡하지만 한 줄로 이어진다. 어느 쪽이나 좁은 골목인 것은 마찬가지다.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다. 혹은 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도 있다. 바로 그 골목 안쪽에 벌집들이 늘어서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가는데 어느 골목이나 비슷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2~3층의 단독 주택이 들어서 있다. 자세히 보면 건물 벽마다 가스계량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계량기 1대가 1세대니 건물 벽만 살펴봐도 대략 몇 세대가 사는지 답이 나온다.
적은 곳은 서너 개, 많은 곳은 십여 개의 계량기가 몰려 있다. 바로 벌집이다. 고개를 들어 건물을 살펴보면 창문보다 문이 많다. 2층 건물도 복도를 따라 문이 늘어섰다.
낮은 주택 건물 사이에 높은 교회가 보인다. 가리봉교회다. 일제 강점기부터 자리 잡은 그 터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교회다. 교회 앞에 있던 학교 ‘양명강습소’는 다방으로 바뀌었다.
자율방범대 사무실도 인근에 자리 잡았다. 여기가 가리봉1동으로, 논과 밭을 일구며 500년을 살아온 가리봉동 마을의 한복판이다.
작은 골목을 꼼꼼히 살펴볼수록 가리봉동의 특징이 나타난다. 사람 한 명 지나기 힘든 골목에도 문이 달렸다. 누군가 산다는 증거다.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붉은 벽돌의 벌집 사이로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옛날 집이 보인다. 예전에는 모두 1층의 낮은 집이었다. 연탄을 때고 공동 화장실을 사용했다. 지금은 옛 모습을 가진 벌집을 찾기 힘들다. 중국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골말 가는 길]
가리봉동은 예전부터 ‘가리봉’이라 불리던 동네와 ‘골말’이라 불리던 동네로 나뉘었다. 지금은 남구로역 4번 출구에서 구분되고 있다.
가리봉시장이 있는 곳이 예전의 가리봉동이다. 이 지역을 둘러봤으니 이제 골말로 발걸음을 옮긴다.
‘골말’은 골짜기의 끝부분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지명이다. 가리봉동에는 아직도 골말이란 이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골말경로당이다.
골말경로당의 노인들은 가리봉2동인 이곳을 지금도 골말이라고 부른다. 그게 익숙하단다. 경로당에서 영일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측백나무가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봐야 한다. 처음 길을 훑어 볼 때는 백이면 백 모두 그냥 지나친다. 나무가 좁은 골목 사이로 가려져 있고, 입구는 빙 돌아 들어가니 설마 이곳에 측백나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위치다.
측백나무는 3층 주택에 둘러 싸여 서 있다. 카메라를 아무리 돌려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좁은 골목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해마다 제를 지낸다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산업화의 1번지이자 공장 지대로 유명한 가리봉동에 ‘상서로운 나무’가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