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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313
한자 近代敎育
영어음역 Geundaegyoyuk
영어의미역 Modern Educ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미정

[정의]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개설]

19세기 말 문호 개방이 시작되면서 근대교육 기관이 등장하였다. 근대 학교의 성립은 우선 정부에서 관학으로 동문학[통변학교], 육영공원을 설립하였고 1895년 고종이 「교육조서」를 내려 교육입국의 뜻을 천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개화를 이루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근대적 교육 제도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교육 제도에 따라 신학제가 제정되었고 1895년 소학교령과 소학교 규칙대강, 1898년 중학교관제 등이 제정되어 관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소학교, 중학교 등이 설립됨으로써 근대교육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사학의 설립은 크게 선교 사업과 함께 이루어진 기독교계 학교와 민간인 사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학교는 우리나라 근대학교의 성립을 위한 선구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의하여 근대학교를 설립하게 하는 데 강력한 자극제와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변천]

1. 개화기의 서울교육

1895년 고종의 「교육조서」이후 관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소학교, 중학교 등이 설립됨으로써 근대교육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사학은 크게 기독교계 학교와 민간인 사학으로 나눌 수 있다. 19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개신교 종파가 서서히 서울로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과 함께 교육 사업을 시작하였고 1885년에 배재학당, 1886년에 이화학당 등이 설립되었다. 또한 당시 사회의 요청에 따라 민간인에 의하여 사립학교도 세워졌다.

2. 일제강점기의 서울교육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강탈한 뒤 식민 통치 기관인 조선총독부로 하여금 친일교육을 강화하게 하였다. 이시기 학교 교육에 관한 방침은 네 차례에 걸쳐 교육령이 개정·공포 될 때마다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과 사회 정세의 즉각적인 반영이 그때그때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식민지 초기의 교육 방침은 1911년에 발표된 「조선교육령」으로 집약되는데, 우리의 민족의식과 문화를 말살하고 일본 제국에 절대 복종하도록 하겠다는 뜻이 나타나 있다. 그 뒤 각종 교육 법령의 제정에 의하여 교육 제도가 정비되어 보통학교[3·4년], 고등보통학교[4년], 여자고등보통학교[3년], 실업학교[2·3년], 간이실업학교, 전문학교[3·4년] 등이 설치되었다. 사립학교의 경우 1908년에 공포된 「사립학교령」을 개정하여 1911년에 「사립학교규칙」을 공포함으로써 민족교육의 근거지인 사립학교의 감독과 통제를 시도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문화 정치를 표방하며 1922년에 「개정 교육령」을 발표했으며, 이를 계기로 조선 학생들에게도 사범학교 및 대학에 진학할 길이 열렸다. 또한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폐지되었던 국어를 필수 과목으로 하였다.

1938년 3월에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반포하였는데, 모든 교육 내용을 일본식으로 강화하고 일본어로 수업하는 등 철저한 황국 신민 교육을 실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1943년에는 제4차 조선교육령인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령」을 반포하여 학교 교육을 철저한 전시 교육 체제로 바꾸어 전쟁 수행의 도구로 만들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말기 약 10년간은 사학에 대한 탄압이 가장 심한 수난기였다.

3. 구로 지역의 근대교육

구로구의 근대교육은 현 오류초등학교, 현 성공회대학교, 현 동양미래대학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구로구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 당시 이성환의 소유인 오류양조장에서 일본 동경농과대학 출신인 송두용이 문맹퇴치와 농촌운동을 하기 위해 4년제 오류학원을 설립한 것이 근대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오류학원은 1936년 6년제 오류학습강습회로 발전했으며 1939년에는 오류심상소학교로, 1941년 초에는 사립 오류학교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1941년 6월 오류동 70번지 오류학원 대지를 소유자인 이성환으로부터 기증받은데 이어 1943년에는 오류공립공민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현재의 오류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항동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는 1914년 4월 30일 대한성공회 3대 교구장인 조마가 신부가 강화군 관청리 25번지에 성미가엘신학원으로 개교하고 1921년 인천 내동 3번지[인천광역시 중구 개항로45번길 21-32]로 이전했다가, 1925년 황국신민화 정책에 의해 강제 폐교 당하였다. 1948년 인천에서 다시 개교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장이었던 이도암 신부와 교수 조용호 신부가 처형당하였고 수녀들도 곤욕을 치루는 비운을 겪으면서 잠시 폐교 상태가 되었다. 이후 1952년에 청주시 수동 222번지로 이전했다가 1957년에 지금의 항동에 학교 부지를 매입하고 1961년에 개교하였다.

고척동에 위치한 동양미래대학은 1939년 4월 1일 동양공과학원으로 설립되어 공업기술인 양성을 시작하였다. 1965년 동양공과전문학교로 바뀌면서 보다 전문적인 공업인을 육성하다가 1974년 12월에 동양공업전문학교로 개편, 대학 교육을 시작하였다. 1980년에 동양공업전문대학으로 승격되었고 2010년 동양미래대학으로 개명되었다.

[참고문헌]
  • 『구로구지』 (구로구지편찬위원회, 1997)
  • 서울특별시교육청(http://www.sen.go.kr/)
  • 서울특별시남부교육청(http://www.nambuedu.seoul.kr/)
  • 동양미래대학(http://www.dytc.ac.kr)
  • 성공회대학교(http://www.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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