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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스 반 바그너 언더우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653
영어음역 Ethel Van Wagner Underwood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복지가|종교인
출신지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타시
성별
생년 1888년(고종 25)연표보기
몰년 1949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연세사회복지관 설립자

[정의]

일제강점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복지가이자 종교인.

[개설]

엘스 반 바그너 언더우드(Ethel Van Wagner Underwood) 여사는 언더우드 2세 원한경의 부인으로, 1888년(고종 25)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타시에서 출생하였다.

[활동사항]

연세사회복지관은 바그너 언더우드 여사가 자신의 사재(私財)와 기독교절제회의 지원으로 1948년 8월 9일 설립하였다. 바그너 여사는 남편 원한경의 다양한 활동에 깊이 동참하면서, 동시에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기독교여자절제회의 일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펼쳤다. 바그너 여사는 당시 한국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활동에 많은 애착을 보였으며,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여러 가지 차별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 여건, 생활 여건을 마련하는 데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혼란한 사회상황 중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 여성들이 매춘 등 사회의 어두운 부분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 상담원 양성, 임시 보호소 설치 등을 주선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바그너 여사는 이러한 일을 위해 부지를 마련하고 법적인 절차를 거쳐 의지할 곳 없는 젊은 여성들을 보호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1948년 8월 바그너 여사는 미군정의 혼란 시기에 짐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오는 농촌 처녀들에게 전도를 하고, 윤락 여성이 되지 않도록 직업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 기독교절제회의 도움으로 절제소녀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그너 여사는 기관 설립 다음해인 1949년 3월 17일 좌익 청년들에게 테러를 당하여 죽음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 속에서도 바그너 여사가 보인 한국에 대한 애정, 특히 한국 여성들을 위한 그녀의 신실한 봉사 정신은 절제소녀관을 통해 지속되었다.

이후 이 절제소녀관에서는 6·25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발생한 전쟁고아들을 보호하게 되었으며, 1·4후퇴 시에는 원한경의 도움으로 보호 중인 소녀들을 인솔하여 제주도로 피난을 가기도 하고, 원한경과 바그너 여사의 장남인 원일한의 집에 소녀들을 임시 수용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봉사를 지속해왔다.

기독교절제소녀관은 1969년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81년 ‘연세사회복지관’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2년부터 1993년까지는 연세의료원에 일부를 임대하여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현재 연세사회복지관은 부모의 사망, 가정 해체, 미혼모등의 사유로 가정 내에서 보호 및 양육을 받을 수 없는 여자 아동들에게 보호·양육 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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