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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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句麗 |
영어음역 | Gogury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오계화 |
[정의]
삼국시대 구로 지역을 일시적으로 지배했던 고대 국가.
[개설]
고구려는 B.C. 37년 주몽(朱蒙)이 건국한 고대 국가이다. 427년(장수왕 15)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펼쳐 백제의 도읍인 한성을 함락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백제 영역이었던 한강 유역은 고구려 관할이 되었고, 지금의 구로 지역도 이때 고구려 영토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형성]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B.C. 37년 부여에서 나온 주몽이 졸본[지금의 환인]에 이르러 고구려를 건국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전부터 토착세력이 정치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漢)은 B.C.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임둔군·진번군을 설치하였고 그 이듬해 현도군을 설치하였는데, 이 현도군에 속한 현 가운데 고구려현이 있었다.
B.C. 75년 고구려 토착세력이 현도군을 몰아내어 고구려현은 혼하(渾河) 상류 흥경·노성 방면으로 옮겨 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도군과 대립하여 싸운 결과 압록강 중하류의 세력 집단도 피폐해졌다. 이 지역이 다시금 고구려 역사의 주 무대로 복원되는 시기는 졸본에 정착했던 유리왕이 A.D. 3년(유리왕 22) 국내성[지금의 집안 일대]으로 도읍을 옮기면서부터이다.
[발전과 멸망]
고구려는 국내성을 기반으로 중국 세력과 맞서며 인근 세력들을 병합해 나가는 한편, 백제·신라와 겨루며 발전을 거듭해 갔다. 427년(장수왕 15)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한 뒤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펼치며 백제와 신라의 영토를 위협하여 475년(장수왕 63) 백제의 도읍인 한성을 함락하였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주부토군(主夫吐郡)과 잉벌노현(仍伐奴縣)이 구로 지역을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부토군은 신라 영역이 된 이후 한주 장제군에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인천광역시 북구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잉벌노현은 이후 신라의 율진군 곡양현(穀壤縣)이 되었는데 1995년 구로구에서 금천구 신설로 이속된 시흥동 일대로 추정된다.
한강 유역을 점령한 고구려는 계속 남하하여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였는데, 충주의 중원고구려비는 그 판도를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의 공동 작전으로 551년(양원왕 7)에 한강 유역을 잃어버렸다. 약진하던 신라는 마침내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에 대한 파상 공격을 감행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70여 년에 걸친 수·당, 거란 및 신라와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을 크게 소모하였고, 내부적으로 정치적 불안을 겪다가 668년(보장왕 27) 나당 연합군에 패함으로써 700여 년을 이어 온 역사를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