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 궁말 산치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2068
한자 仁倉洞宮말山致誠
영어공식명칭 Inchangdong Gungmal Sanchiseong
이칭/별칭 궁말 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동구릉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동구동 66]지도보기
성격 산치성
의례 시기/일시 음력 10월 초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궁말에서 음력 10월 초에 지내는 산치성.

[개설]

궁말은 과거 궁(宮)이 있었다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 인창동 궁말 산치성은 궁말에서 음력 10월 초에 산치성으로 지내는 동제이다. 당시에는 치성 나무인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었고, 그 옆에 제를 올리는 그릇과 음식 만드는 도구들을 보관하는 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산치성의 제반 준비는 각 통장들이 담당하고 제관 한 명을 따로 선출하여 치성을 주관하도록 한다. 과거에는 금기가 엄하여 날을 받으면 비린 것을 먹지 않고 밖에 나가서 자지도 않으며 조심하였다. 궁말과 함께 이웃한 양지말, 응당말, 베틀 고개에 사는 사람들도 산치성에 참여하였고, 제비는 네 개 마을 사람들이 각출하였다.

[연원 및 변천]

궁말에서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나 오래전부터 산제사 혹은 산치성이라고 하여 동제를 지내 왔다. 지금은 볼 수 없으나 현재 인창 초등학교 자리에 제물을 준비하는 집이 있었다고 한다. 느티나무가 베어지고 산치성을 지내는 장소 밑으로 전철이 다니는데다 제를 지내는 데 적극적이던 촌로들도 작고하여 현재로서는 제를 올리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궁말에서는 산치성을 지내는 장소가 세 군데에 있었다. 세 곳에 올리는 제물도 서로 달랐다. 당집은 없으며 대신 산치성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이자 제를 지낼 때 음식을 장만하는 집이 있었다. 산치성을 지내는 장소는 인창 초등학교 뒤쪽에 동구릉이라고 불리는 마을 뒷산에 있었다. 산치성을 지낼 때는 첫 번째 산치성을 드리는 곳, 두 번째 산치성을 드리는 곳, 세 번째 산치성을 드리는 곳에 각각 다르게 음식을 올린다.

[절차]

인창동 궁말 산치성의 제의는 먼저 음식을 조리하는 곳에 가서 터줏가리를 만들고 치성에 쓰일 음식을 익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제물은 산치성을 올리는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다. 첫째 장소에는 떡, 과일, 두부, 나물, 산자, 밥을 올리고, 둘째 장소에는 떡, 북어 세 마리, 산적을 올리며, 셋째 장소에는 떡, 소머리, 우족을 올린다. 과거 제물을 익힐 때에는 인근의 당 우물에서만 물을 길어 와서 사용하였다. 각각의 치성터에서 제물을 올린 뒤에 절을 하고 축문을 읽는다. 산치성을 지낼 때 절을 하는 제주는 한 사람이며, 제주는 두루마기를 입었다. 세 곳의 산치성을 전부 마치면 치성에 쓰였던 제물을 떡 한 쪽, 과일 한 개 등 모두 동일하게 나눈다.

[축문]

"유세차 ○○년 ○월삭 초○일 ○○ 유학 ○○○ 감소고우 토지지신 금위산신지위 인창동중인민 관재구설 삼재팔난 우마계견 가축일절 무해유덕 축원 신기보우 무후난 근이 청작포혜 지천우신 상향[維歲次 ○○年 ○月朔 初○日 ○○ 幼學 ○○○ 敢昭告于 土地之神 今爲山神之位 仁倉洞中人民 官災口說 三災八難 牛馬鷄犬 家畜一切 無害有德 祝願 神其保佑 無後難 謹以 淸酌脯醯 祗薦于神 尙饗]"

[부대 행사]

인창동 궁말 산치성 제의가 끝나면 제의를 준비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음복을 하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현황]

치성제를 올리던 치성 나무도 베어지도 제를 준비하던 집도 헐리고 없다. 치성제를 위해 사용하던 우물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인창동에 터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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