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80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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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致誠 |
영어공식명칭 | Sanchiseung |
이칭/별칭 | 산고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서 산신에게 올리는 치성.
[개설]
산치성은 산신(山神)에게 올리는 치성이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산신 신앙이 강하다. 우리 민족은 산을 의지하고 경외하며 살아왔다. 과거에는 산에서 사냥을 하고 목축을 하였으며, 열매를 채취하고 약초를 캐고 밭을 일구어 작물을 재배하였다. 또 목재와 땔감을 얻었고, 사람이 죽으면 묘지를 썼으며, 집과 촌락을 만들 때도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고려하였다. 외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산 위에 산성을 짓기도 하였다. 또한 산은 바람을 막아 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세속에 지친 인간에게 생기와 활력을 준다. 시원한 계곡과 숲속은 휴식처가 된다. 이처럼 산은 경제적 혜택은 물론 정신적, 육체적 건강까지 제공한다. 산이 주는 정신적·육체적 생기와 활력은 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기(精氣)로 표현되어 어느 산 주위에서 태어났다 하면 그 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하였다. 산의 정기가 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으며, '수호신'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산을 삶의 터전으로 의지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산은 당연히 제사와 기도의 대상이 되었다. 산을 받들어 국가에서는 국행제(國行祭)를,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개인들은 수시로 산치성을 드렸고, 안택 고사 때도 산신의 몫으로 음식을 올렸다. 또 묘 터를 파 놓을 때, 산에서 큰 나무를 벨 때, 산에 약초를 캐러 갈 때도 산신제를 지냈으며, 사찰에서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산신 신앙을 수용하여 산신각을 지어 모시고 있다.
[산치성의 유래]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郎) 망해사조(望海寺條)'를 보면, 헌강왕(憲康王)[?~886]이 오악신(五岳神)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어 산치성의 시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리시의 산치성]
경기도 구리시에도 우리나라의 산신 신앙 전통이 이어져 행해지고 있다. 구리시에는 아차산 등 여러 산이 있다. 이러한 산줄기에 위치한 마을들은 대부분 산치성을 드리고 있다. 구리시에서 행해진 동제로는 아천동 우미내 마을 대동 고사, 교문동 한다리 마을 대동 고사, 토평동 벌말 도당나무 치성과 서낭나무 치성, 수택동 수늪 마을 산치성, 수택동 검배 마을 서낭나무 고사, 수택동 이촌 마을 산치성, 인창동 궁말 산치성, 인창동 동창 마을 산신제와 부군제, 사노동 산치성, 사노동 언재 마을 산치성 등이 있다. 동제의 명칭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모시는 신격은 기본적으로 산신을 포함하고 있다. 명칭은 산치성·산신제·대동 고사·도당굿·부군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나 그 바탕에는 산에 대한 숭배가 있다. '치성'이란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리는 것으로 고사(告祀)나 제(祭)를 올리는 행위가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산치성·산고사·산신제 등은 언어 표현의 차이일 뿐 실제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구리시 여러 마을에서 지내는 산치성의 절차는 제물을 진설한 후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절을 하는 간소화된 유교식 제례 형태가 전반부에 행해지며, 이어서 소지(燒紙)를 올리고 소원을 기원하는 행위로 마무리된다. 참고로 소지를 올리는 행위는 무속 의례에서 주로 나타나는 행위이다. 원래 무속적 행위로 이루어지던 산치성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유교 제례의 형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