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5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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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영어공식명칭 | elec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 주민이 투표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란 집단 또는 단체의 특정한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집단이나 단체의 구성원 중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가 정해진 방법에 따라 자유의사 표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선거는 다양한 집단이나 단체 내에서 이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정치 행위를 하는 선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이 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의원 선거, 「지방 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 및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 선거 등이 있다. 구리시는 1914년 3월 1일 양주군 구리면으로 신설된 이래 1973년 7월 1일 양주군 구리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0년에는 4월 1일 남양주군 구리읍으로 관할이 변경되었다. 1986년 1월 1일에 이르러 구리시로 승격되면서 구리시는 단일 선거구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
제1대 대통령 선거는 1948년 7월 20일 국회 의원들을 통해 간접 선거로 치러졌으며, 재직 의원 198명 중 196명이 투표하여 이승만 후보가 180표라는 절대 다수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952년 8월 5일에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의 선거인 총 6만 4967명 중에서 6만 2195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전국 투표율인 88.1%보다 높은 95.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당시 무효 투표수 1,930표를 제외한 유효 투표수 6만 265표 중에서 5만 3628표가 이승만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1956년 5월 15일에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의 유권자들은 전국 투표율인 94.4%와 비슷한 94.6%가 투표에 참가하였다. 당시 이승만 후보는 총 유효 투표수의 약 70%에 해당하는 504만 6437표를 얻어 당선되었는데, 양주군의 유권자들의 이승만 지지율은 약 78.5%였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이 단일 후보였으며, 양주군 총 유효 투표자 중 약 90%가 이승만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 발표 후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4·19 혁명이 일어났고, 4월 26일 국회 결의로 모든 투표가 무효 처리되었다. 국회는 내각 책임제로 권력 구조가 개편되었고, 새롭게 제4대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당시 민주당의 윤보선 후보가 259명의 재석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208표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사 정권이 구성되고, 1962년 12월 17일 대통령 중심제로 권력 구조가 개편되었다.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의 투표율은 전국 85%의 투표율과 비슷한 85.2%를 기록하였으며, 민주당 윤보선 후보 지지율이 58.7%를 보인 반면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31.5%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는 전국 지지율에서 윤보선 45.1%,박정희 46.6%를 얻은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7년 5월 3일에 실시되었으며,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의 투표율은 전국 투표율인 83.6%와 비슷한 84.3%의 유권자가 참여하였다. 당시 양주군의 후보자 지지율은 박정희 46.4%, 윤보선 47.6%를 보였고, 전국 득표율에서 앞선 박정희 후보가 제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주군 투표율은 전국 투표율 79.8%보다 약간 높은 81.5%를 보였다. 당시 양주군의 후보자 지지율은 박정희 49.8%, 김대중 48.2%를 보였으며, 전국 득표율에서 앞선 박정희 후보가 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72년 대통령 간선제를 핵심으로 한 유신 헌법이 공표되면서 12월 23일 실시된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78년 7월 6일 실시한 제9대 대통령 선거 역시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선출하는 간선제를 통해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피살된 이후 같은 해 12월 6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 후보로 출마한 최규하가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1980년 5월 17일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을 실각시키고, 같은 해 8월 27일 통일 주체 국민 회의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선거인단으로 뽑는 제12대 대통령 선거가1981년 2월 25일 실시되어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포함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6년 구리읍에서 구리시로 승격하여 처음 치른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구리시 투표율은 전국 89.2%, 경기도 88.4%의 투표율과 비슷한 87.3%을 보였다. 당시 구리시의 유효 투표수 5만 486표 중에서 민정당의 노태우가 38.5%에 해당하는 1만 9451표를 얻어 27.8%의 표를 얻은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 24.9%의 표를 얻은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를 앞질렀다. 이는 득표수에 따른 후보자별 전국 득표율인 노태우 36.6%, 김영삼 28.0%, 김대중 27.0%와 비슷한 수치였다.
1992년 12월 18일에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구리시 유권자들은 80%가 투표에 참여하여 김영삼 37%, 김대중 32.4%, 정주영 22.4%의 지지를 보였다. 이는 전국 후보자 지지율순과 같았으며,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구리시 유권자 중 80%가 투표에 참여하여 이회창 34.9%, 김대중 38.6%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전국 득표율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앞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전보다 낮은 70.6%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여 이회창 44.89%, 노무현 50.64%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대통령 후보자 전국 지지율인 이회창 46.6, 노무현 48.9%와 유사한 수치였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구리시 유권자 중에서 62.9%가 투표에 참여하였고 정동영 22.79%, 이명박 54.25%의 지지율을 보였는데, 대통령 후보자 전국 지지율인 정동영 23.55%, 이명박 51.88%와 유사한 수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구리시 유권자 중 75.7%가 투표에 참여하였으며, 박근혜 50.05%, 문재인 49.59%의 지지율을 보였다.
[국회 의원 선거]
2016년 1월 현재 국회 의원 선거는 미군정 감독 하에 실시된 1948년 총선을 시작으로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 의원 선거에 이르기까지 실시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 국회 의원 선거에서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 을구에서 이진수가 당선되었고,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양주군 을구에서 이진수가 당선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양주군 을구에서 강승구가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58년 5월 2일 실시되었고 양주군 을구에서는 강성태가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실시된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양주군 을구에서는 제3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강승구가 당선되었고,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개정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1963년 11월 26일 실시된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제4 선거구인 의정부시·양주군에서는 제3대, 5대 국회 의원을 지낸 강승구가 당선되었다. 당시 「국회 의원 선거법」의 내용은 소선거구제 실시, 전국구 제도 도입, 부재자 투표제 실시, 선거 관리 위원회 위상 강화 등이었고,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은 의정부시와 함께 경기도 제4 지역구에 속했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구리면이 속한 제4선거구 양주군·의정부시에서는 이진용이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제4선거구 양주군·의정부시에서 이윤학이 당선되었다. 유신 헌법에 따라 개정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1973년 2월 27일에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제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가 개편되어 구리읍이 속한 양주군은 의정부, 파주와 함께 제3 선거구에 속하였으며, 당시 당선자는 박명근과 이진용이었다.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박명근과 김형광이 당선되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종식되고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1년 3월 15일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전에 1980년 4월 1일 양주군에서 8개 읍·면이 분리되어 남양주군이 신설되면서 구리읍은 남양주군에 속하였고, 남양주군은 양평군과 같은 선거구에 속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제8선거구인 남양주·양평의 선거 결과 김영선과 조병봉이 당선되었다. 1985년 2월 12일에 실시된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구리읍이 속한 남양주·양평에서 김영선과 조병봉이 당선되었다.
1986년 1월 1일에 구리읍은 구리시로 승격된 다음,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구리시는 단일 선거구가 되었고, 전용원이 당선되었다.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정주일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6년 4월 11일 실시된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전용원이 당선되었고, 2000년 4월 13일에 실시된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전용원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2004년 4월 15일에 실시된 제1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윤호중이 당선되었고,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주광덕이 당선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실시된 제1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구리시에서는 제17대 당선자였던 윤호중이 당선되었다.
[지방 선거]
한국의 근대 지방 자치 제도는 1948년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지방 자치법」의 제정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정부의 지방 의회 선거 연기와 전쟁을 이유로 구리면에서는 1956년에 이르러 첫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다. 1956년 8월 8일 시·읍·면장 의회 의원 선거 및 시·읍·면장 선거가 실시되었고, 8월 13일에는 서울특별시·도의회 의원 선거 등이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구리면 의회 의원으로는 김용배, 정수천, 최흥수, 박흥진, 임희창, 안장명, 윤태봉, 임범식, 최흥식, 김덕진, 이강호, 이사범이 구리 면장에는 안순봉이 각각 당선되었다. 경기도 의회 의원 선거 결과 구리면이 속한 양주군에서는 박인조, 전흥린, 조병봉, 신흥균이 당선되었다. 이후 1960년 12월 제3차 선거까지 지속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지방 자치제가 중단되어 약 30년간의 침체기가 이어지다가 1991년에 다시 치러지게 되었다.
1991년 3월 26일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구리시 의회 의원으로는 이석기, 강자현, 지홍우, 이장국, 이석용, 이상운, 김문식, 양태흥이 당선되었다. 이어서 6월 20일에는 서울특별시·직할시·도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구리시에서는 이동식, 윤인식, 김학운 3명이 경기도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5년부터는 광역·지방 자치 단체장 및 의원 등 4대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였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선거 결과 구리시 의회 의원에는 안영기, 최만수, 김경선, 김중수, 고준선, 김용호, 이상운, 손명렬, 양태흥, 김영현이 당선되었고, 경기도 의회 의원으로 구리시에서는 최덕구, 박효녕, 김문식이 당선되었다. 구리 시장에는 이무성이 당선되었으며, 경기도 지사에는 이인제가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구리시 의회 의원 선거로 최고병, 김경선, 김중수, 김용호, 이상운, 김영현, 이명우가 당선되었고, 경기도 의회 의원 선거 결과 구리시에서는 최덕구, 손명렬이 당선되었다. 구리 시장에는 박영순이 당선되었고, 경기도 지사에는 임창열이 당선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구리시 의회 의원 선거 결과 최고병, 김경선, 김중수, 김용호, 이상운, 김영현이 제2회에 이어 구리시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권봉수가 새롭게 당선되었다. 경기도 의회 의원 선거 결과 구리시에서는 이장국과 양태흥이 당선되었고, 구리 시장에는 이무성, 경기도 지사에는 손학규가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구리시 의회 의원으로 신태식, 김경선, 최고병, 권봉수, 김광수, 김명수가 당선되었고, 기초 의원 비례 대표로 진화자가 뽑혔다. 경기도 의회 의원 선거 결과 구리시에서는 박호남, 양태흥이 당선되었고, 구리 시장에는 박영순, 경기도 지사에는 김문수가 당선되었다.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제5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구리시 의회 의원으로는 진화자, 황복순, 신동화, 김희섭, 김용호, 박석윤이 당선되었고, 기초 의원 비례 대표로 민경자가 선출되었다. 경기도 의회 의원 선거 결과 구리시에서는 서형열과 안승남이 당선되었다. 구리 시장에는 박영순, 경기도 지사에는 김문수가 각각 재선하였다.
2014년 6월 4일 치러진 제6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구리시 의회 의원으로는 강광섭, 진화자, 신동화, 장향숙, 박석윤, 민경자가 당선되고 기초 의원 비례 대표로는 임연옥이 당선되었다. 경기도 의회 의원 선거 결과 구리시에서는 서형열과 안승남이 당선되었다. 박영순이 제12대, 제13대에 이어 제14대 구리 시장이 되었고, 경기도 지사에는 남경필이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