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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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岩-由來 |
영어의미역 | Origin of Beopam Geolsi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화숙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서 법암과 걸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법암 걸실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범암마을의 사람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에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1리 주민 시병모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지명의 유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1996년 고령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고령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꽃질마을에서 대평리 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법암이 있다. 법암에서 마주 보이는 작은 산 아래에 걸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걸실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쳐들어 왔을 때 걸실의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지 않고 집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집에 남아 있었다’고 하여 ‘있을 거(居)’와 ‘집 실(室)’을 써서 거실(居室)로 불리다가 결실, 거어실, 거오실, 거호(居乎), 거호동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 이 마을의 뒷산이 승려가 장삼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법승곡이라고 불리며, 이 마을에 대가야국 때 축조한 운라산성이 있어서 ‘산성 밑 마을’이라는 뜻으로 법성곡 또는 법증곡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법암 걸실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집에 남아 있었다는 걸실’, ‘승려의 춤추는 모습과 같다는 법승곡’, ‘산성 밑 마을이라는 법성곡’ 등이다. 이 이야기는 걸실과 같이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거나 법승곡 또는 법성곡과 같이 지명에 관련된 지명전설이다. 고령 지역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지명 혹은 자연물 명칭 유래담이 전하고 있는데 「도진마을의 절벽 백마덤 이야기」도 임진왜란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 지명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