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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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洸 |
영어음역 | Park Gwa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윤정원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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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
성별 | 남 |
생년 | 1882년 |
대표경력 | 의열단 단원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광(朴洸)[1882~?]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박지환(朴志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박광은 1909년 안희제(安熙濟), 윤세복(尹世復), 김동삼(金東三), 신팔균(申八均) 등 80여 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 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을 꾸려 항일 활동을 펼쳤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문상직(文相直)·이남기(李南基) 등과 함께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표면상 신동상회(信東商會)라는 곡물 무역상을 경영하면서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삼아 백산상회(白山商會)와 연계하여 독립운동가를 은닉해 주거나 여비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신규식(申圭植), 조성환(曺成煥), 박은식(朴殷植) 등을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호놀룰루 동포들의 기관지인 『신한민보(新韓民報)』·『국민보(國民報)』 등을 들여와 국내에 배포하며 항일 독립 의식의 고취에 힘썼다.
1919년에는 영남과 호서 지방 유림 137명이 서명한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만주에 건너온 김창숙(金昌淑)과 박돈서(朴敦緖)에게 여행 편의를 제공하고 국내외의 연락을 맡아 활동하였다. 1919년 7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통신원 황대벽(黃大闢)에게서 고유문(告諭文)·『독립신문』·대한민국 임시정부 각원개조서(閣員改造書) 등의 문서를 교부받아 송재기(宋載基)를 통해 국내에 배포하였다.
그 후 김원봉(金元鳳)이 주도하여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신동상회를 독립운동 거점으로 제공하며 활동하였다. 1923년 11월에는 김원봉에게서 무기와 신임장을 인수받아 강홍열(姜弘烈)·이상쾌(李相快)에게 전해 줘 이들로 하여금 국내로 잠입하여 김정현(金禎顯)·구여순(具汝淳)·오세덕(吳世悳)·문시환(文時煥)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펴도록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과 1990년에 각각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