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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046
한자 自然災害
영어의미역 Natural Disaster
이칭/별칭 천재지변(天災地變)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상일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발생한 기상·지변·생물 등 자연 현상으로 인한 피해.

[개설]

고령군은 한반도 남부 내륙의 경상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어 쓰나미 등과 같은 해안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없다. 그러나 동쪽으로 낙동강이 인접해 있어 여름철 집중 강수로 인한 풍수해와 겨울철 강수량 부족으로 인한 가뭄으로 인해 봄철에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를 겪기도 한다.

[풍수해]

고령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대부분은 기상재해로, 그 중 풍수 피해가 가장 많다. 특히 여름철 장마나 태풍 등으로 인한 집중 호우로 인명 피해 및 농경지가 침수되고 주택이 파괴되는 등 재산상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고령군에서 발간한 『통계연보』에 따르면 풍수해로 인해 2003년 128명, 2004년 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침수 면적은 2003년 2.86㎢, 2006년 4.4㎢, 2007년 0.41㎢에 달하였다.

피해액 총액은 2003년 151억 9400만 원[건물 4억 2800만 원, 선박 5백만 원, 농경지 5300만 원, 공공시설 88억 7500만 원, 기타 58억 3300만 원], 2004년 4억 9623만 9000원[공공시설 4억 5676만 2000원, 기타 3947만 7000원], 2006년 17억 8500만 원[농경지 2억 1900만 원, 공공시설 15억 6600만 원], 2007년 6억 7734만 8000원[농경지 2700만 원, 공공시설 6억 5034만 8000원]이다.

고령군은 동쪽으로 다산면, 성산면, 개진면, 우곡면낙동강과 인접해 있어 매년 장마와 태풍 등으로 인한 낙동강의 범람과 제방 붕괴 등의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지난 1985년 월성제방, 1989년 다산제방, 2000년 봉산제방, 2002년 등금정 나루터제방, 2003년 도진제방 등의 침하와 붕괴로 인해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제방을 복구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낙동강 변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 왔다. 특히 지난 2006년 태풍 에위니아와 2007년 나리가 지나간 이후 국가 하천을 제외한 고령 지역의 지방 하천과 소하천 주변의 제방이 유실되고 침하되어 20차례 이상의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태풍이나 장마철이 아닌 경우에도 규모는 작지만 1년에 2~3차례 이상 제방이 유실되거나 침하되고 있다.

2000년 9월 태풍 사오마이가 16일 오전 남서해안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한 후 영남 내륙 지방을 관통하면서, 고령 지역에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을 동반한 집중 호우가 발생하여 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2000년 9월 12일부터 평균 193㎜의 많은 비가 내려 낙동강 수위가 상승하면서, 2000년 9월 15일에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 낙동강 봉산제방이 60여m 붕괴되었다. 그리고 낙동강 고령교 수위도 10m 내외에 이르며, 11m의 위험 수위에 육박하였다. 당시 태풍 사오마이로 인해 1.97㎢에 이르는 농경지가 침수되었고, 0.12㎢의 벼가 쓰러졌다.

2003년 9월 제14로 태풍 매미로 인해 안동댐이 방류되면서 낙동강 수위가 올라가 하류부에 있는 고령교 지점의 수위가 위험 수위를 1m 넘긴 12m를 기록하였다. 이때 마을에서 8㎞ 떨어진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회천으로 낙동강이 역류하기 시작했고, 결국 불어난 낙동강의 수압을 견디지 못해 마을 아래에서 회천을 막고 있던 도진제방이 순식간에 70m 가량 무너지면서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마을 110가구 중 22가구가 완전히 침수되었다. 또한 마을 입구 도로에서 면사무소와 파출소로 이어지는 도로도 물에 잠겨 차량 대신 보트가 오가는 수상 마을로 변했다. 이때의 낙동강 수위는 1959년 태풍 사라가 몰아칠 때와 같았다.

2004년 8월에는 제15호 태풍 매미로 인한 풍수해를 입었고, 2006년 7월에는 제3호 태풍 에위니아의 북상으로 인해 고령 지역 농경지 0.93㎢와 주택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강수량은 2006년 7월 8일 오후부터 10일까지 277㎜를 기록하였다. 2007년 9월에는 제11호 태풍 나리의 영향으로 2007년 9월 16일부터 17일까지 고령 지역에 122㎜의 집중호우가 내렸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고령군 덕곡면은 146㎜를 기록하였다.

[지진]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판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인도-호주판이 북상하면서 유라시아판을 더욱 동쪽으로 밀고 있으므로 이동하는 태평양판과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충돌 에너지는 1차적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 해소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지진이 발생하는 이유는 충돌의 힘이 100% 사라지지 않고 지각에 축적되어 있다가 약한 단층대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활단층으로 알려져 있는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경상북도 영덕군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과 울산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울산단층이 활동하면서 2009년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 가장 많은 10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전라북도 3회, 부산광역시·경상남도와 대전광역시·충청남도에서 각각 2회를 기록했고, 서울특별시·경기도와 광주광역시·전라남도에서 각각 1회가 발생했다.

한반도 내륙에 위치한 고령군 일대도 지진의 안전지대이기는 하지만 1992년, 1998년, 2000년, 2009년에 지진이 발생했고, 역사적으로도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祖實錄)』에는 고령 지역에서 총 11회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먼저 세종 때인 1425년(세종 7) 1월 4일과 2월 11일, 1430년(세종 12) 4월 18일과 12월 12일 총 4회, 중종 때는 1525년(중종 20) 8월 6일 1회의 지진 기록이 남아 있다. 명종 때는 1549년(명종 4) 1월 2일, 1553년(명종 8) 11월 27일, 1555년(명종 10) 2월 11일, 1557년(명종 12) 3월 13일, 1562년(명종 17) 11월 2일 총 5회로 가장 많은 지진 기록이 남아 있고, 선조 때는 1594년(선조 27) 6월 3일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최근에는 1992년 북위 35.8°, 동경 128.4° 지역에서 규모 2.6, 1998년 북위 35.8° 동경 128.3° 지역에서 규모 2.5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2000년 2월 21일 오전 1시 6분 30초에 북위 35.8° 동경 128.2°의 대가야읍 지산리 고령군청 북서쪽 약 6㎞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2.1의 지진이 있었다. 또한 2002년 1월 8일 오전 8시 18분 30초에는 북위 35.8°, 동경 128.2°의 대가야읍 지산리 고령군청 북서쪽 약 5㎞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2.8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난해 2009년 6월 28일 오후 10시 7분 48초에 북위 35.78°, 동경 128.29°인 대가야읍 지산리 고령군청 북북동쪽 7㎞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인근의 대구 일부 지역에서도 ‘쿵’ 하는 진동이 느껴졌지만, 진원지에 거주하는 사람만 약간 놀라는 수준이고, 가옥이나 기타 건물에 균열이 가는 등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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