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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141
한자 大韓佛敎曹溪宗第-敎區
영어의미역 17 District of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모악15길 1]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교단체
설립자 대한불교조계종
전화 063-548-4441
팩스 063-548-1390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교구.

[개설]

대한불교조계종은 한국 불교 최대 종단으로 전국에 약 3,000여 개의 사찰을 두고 있으며 25교구로 구분되어 있다. 각 교구에는 해당 지역 교구를 관리하는 본사가 있는데 그 중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금산사(金山寺)에 교구 본사를 두고 있다. 599년에 창건된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면서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진표율사숭제법사의 법을 이어받아 수행하였고, 변산의 불사의방에서 17년이나 극한적 고행 수도인 망신참(亡身懺)을 하여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법을 인가받았다는 표지인 간자(簡子)를 건네받은 이야기는 불교사상 유명하다. 그 뒤 왕실의 후원을 받아 762년부터 766년 동안 금산사를 대찰로 중창하였다. 후삼국시대인 935년에는 후백제의 견훤금산사에 유폐된 것으로 보아 여전히 이 지역 최대의 사찰로 인식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에서는 1097년 혜덕왕사(慧德王師)가 중창을 하였는데, 이때가 금산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를 이루었던 시기이다. 가람 배치도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 등으로 구획되어 86동의 건물과 43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니 금산사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 처영(處英)이 이끄는 의승병의 거점이 되어 호국에 앞장섰으나 정유재란 때 왜구의 주공격 대상이 되어 가람이 불타 버렸다.

그 뒤 수문대사(守文大師)가 대사구 지역을 복구하면서 중창을 이루었다. 금산사의 명성은 계속 이어져 1725년 승려 지안(志安)이 화엄대법회를 열었을 때 전국에서 1,4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할 정도였다. 1961년 승려 월주가 중창을 시작하여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전통찻집, 보제루 등을 새로 짓고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등을 해체 복원하였다. 아울러 방등계단 성역화 불사를 마무리하여 대사구를 완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설립목적]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는 전라북도 전주, 익산, 군산, 김제, 임실, 남원, 무주, 진안, 장수 지역의 불교의 재건과 중흥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현황]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는 전라북도 전주, 익산, 군산, 김제, 임실, 남원, 무주, 진안, 장수 지역의 사찰을 관장하고 있으며, 교구 본사가 있는 금산사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주요 지정문화재로는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제25호], 금산사 방등계단[보물 제26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금산사 노주[보물 제22호], 금산사 석등[보물 제828호], 금산사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제28호], 금산사 석련대[보물 제23호] 등이 있다.

한편 2009년 8월 22일 금산사 제14대 주지에 승려 원행이 추대되었다. 원행은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조계종 총무원장 특별보좌관과 조계종 중앙종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구촌공생회 이사, 전북사암승가회 회장, 전북도경승지단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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