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80 |
---|---|
한자 | 李鍾熙 |
영어음역 | Yi Jong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663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채수환 |
성격 | 독립운동가 |
---|---|
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663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 |
몰년 | 1946년 |
대표경력 | 임시정부의정원 의원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종희(李鍾熙)는 1890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66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종희란 이름 외에도 이집중(李集中), 이인홍(李仁洪) 등의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조선의열단에 가입하고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1922년 3월 김익상(金益狀)·오성륜(吳成崙)과 함께 상해 황포탄(黃浦灘)에서 일본 육군대장 전중의일(田中義一)을 저격하려다 실패했는데, 이때 김익상과 오성륜은 체포되었으나 이종희는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다.
1925년 중국 광동에 있는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제4기생으로 졸업하였고, 그 뒤 바로 상해와 남경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중국군 부대 상위연장(上尉連長)으로 복무하면서 남경에서 의열단 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관을 맡기도 하였다. 1936년 2월에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군사국 특무부 책임자로 있으면서 일제 요인 암살 등을 지휘하였다.
1938년 10월 김약산(金若山), 박효삼(朴孝三), 이익성(李益星), 김세일(金世日) 등과 함께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조선 혁명청년들에게 정확한 전투적 정치 노선을 제시하였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자 광복군 제1지대 소교(少校)로 임명되어 총무조장으로 복무하였다.
광복군 제1지대 본부는 중경에 있었는데, 주로 대원들의 군량 수급 사무와 신입 대원에 대한 교육 훈련을 행하였다. 또한 연합 구축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을 요청할 경우 인원을 파견해 주고, 교육 훈련이 끝난 대원들을 지대장 특명으로 수시로 적의 점령지구로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연합군과 합작 공작 등 임무를 수행하게 하면서 각 구대의 공작 활동을 지휘 감독하였다. 이종희는 초대 지대장인 김약산의 뒤를 이어 제2대 제1지대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1942년 10월에는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의정원 전라도 의원 선거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임시정부의정원 의원과 광복군 고급 참모로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1946년 귀국하던 도중 배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63년과 1968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