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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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華巖 |
영어음역 | Jeong Hwaam |
이칭/별칭 | 정윤옥(鄭允玉),정현섭(鄭賢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활동사항]
정윤옥(鄭允玉) 또는 정현섭(鄭賢燮)으로도 불렸던 정화암(鄭華巖)은 1896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미국 의회사절단이 내한하자 일본의 침략상과 학정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고 1921년 10월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였다.
정화암은 1924년부터 상해에서 이회영(李會榮)·신채호(申采浩) 등과 교유하며, 조국의 광복은 무력 투쟁으로만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군자금 확보 방안을 강구하였다. 1928년 안공근(安恭根), 이정규(李丁奎), 한일원(韓一元), 이을규(李乙奎) 등과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을 결성하고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4월 신현정(申鉉鼎)·최석영(崔錫榮) 등이 천안의 호서은행에서 5,700원의 자금을 가져오자 유자명(柳子明)·이달(李達)·이하유(李何有)·오면식(吳冕植) 등과 함께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상해부를 조직하였으며,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하여 본격적인 무력 항쟁을 도모하였다. 1931년 조직을 강화하고 상해 등지에서 친일배와 전향자 등을 색출하여 암살 대상으로 지목, 결정하고 실천하게 하였으며, 또한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을 구성원으로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 영사관과 병영에 폭탄을 던지는 등 무력 투쟁을 계속하였다.
1936년부터는 남화연맹의 기관지 『남화통신(南華通信)』을 매월 발간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맹혈단이라는 별동대를 조직하여 무력 투쟁을 선동하였다. 1937년 9월 중국인 무정부주의자를 규합하여 중한청년연합회를 결성하는 한편 『항쟁시보(抗爭時報)』를 발간하여 한중 양 국민의 공동 투쟁을 도모하였다.
1940년부터 이강(李剛)·신정숙(申貞淑)·전복근(全福根)·강치명(姜治明) 등과 함께 상해 방면에서 활동하며, 광복군의 현지 책임자로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 공군에 미영포로수용소의 소재를 확인하여 보고하는 등 정보활동에 기여하였다.
1946년 상하이 한인인성학교 이사장, 상하이교민단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귀국하여 1958년 민권수호연맹 지도위원, 1959년 사회대중당 지도위원, 통사당(統社黨)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1973년 통일당 최고위원, 1974년 통일당 상임고문에 추대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나의 회고록』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