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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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必達 |
영어음역 | Jo Pildal |
이칭/별칭 | 행지(行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행지(行之)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叅判)에 추증된 조사회(趙思誨)이며,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여급(宋礪伋)의 딸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활동사항]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1624년(인조 2)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호위하였다. 선전관의금부도사(宣傳官義禁府都事)·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순안현령(順安縣令)·나주감목관(羅州監牧官)·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 등을 역임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제수(除授)되었다.
효종이 즉위하자 부호군(副護軍), 칠국별장(七局別將), 수어청별장 겸 오위장군(守御廳別將兼五衛將軍), 남도병마절도사(南道兵馬節度使),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 등을 거쳐 1655년(효종 6) 전라남도병마절도사(全羅南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고 곧이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좌도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兼晋州牧使),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三道水軍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에 올랐다.
효종조에는 송시열(宋時烈)·유즙(柳楫) 등과 함께 북벌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660년(현종 1)에 무과 1시험장의 시관(試官)으로서 차비관(差備官)이 사사로이 개인의 사정을 봐주는 부정을 행한 것을 단속하지 못한 책임으로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가, 1663년(현종 4)에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平安道兵馬節度使兼安州牧使)로 복직되어 재임하던 중 병사하였다.